‘가정폭력’은 특례법이 적용되지만... 교제폭력, 직접 규율 별도 법률 無 경찰, 현장서 ‘가정’ 범위 판단 혼란 “피해자 안전 우선 법·제도 개선 시급”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 보호 대응 체계가 다르지만, 정작 범행 현장에서는 사실혼 관계가 단순 연인 간 동거로 오인되는 등 관계성 입증이 즉각 어려워 피해자 보호에 구멍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정폭력으로 분류돼야 할 사안이 데이트 폭력으로 처리되면서, 재범 위험과 강력 범죄로 번질 우려가 큰 만큼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일 법무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현행법상 가정폭력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되지만, 데이트 폭력(교제 폭력)은 이를 직접 규율하는 별도의 법률이 없다. 이에 따라 사건 처리와 피해자 보호 조치도 각각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
가정폭력은 경찰의 응급조치, 임시 조치, 법원의 보호명령 등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강제 분리와 보호가 가능하다. 반면 데이트 폭력은 주로 형법상 폭행이나 협박죄로 다뤄져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사건이 종결되는 반의사불벌죄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문제는 현장에서 가정폭력인지 데이트 폭력인지, 즉 관계성을 즉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가정폭력은 혼인·혈연·입양뿐 아니라 사실혼, 계부모·자녀 관계, 동거하는 친족 등 일정한 가족 범위 내에서 발생한 폭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실혼인지 단순 동거인지, 연인 관계 인지처럼 경계가 모호한 경우에는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계성 확인, 폭력 반복성, 피해자 안전성 등을 신속히 판단해야 하지만, 관련 서류나 증거가 즉시 확보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찰은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화성 동탄에서 발생한 납치 살인 사건에서는 30대 남성 A씨가 사실혼 관계였던 30대 여성 B씨를 수차례 폭행·협박했고, B씨는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이를 단순 교제 폭력으로 판단해 현장 종결로 처리했다. B씨는 보호 조치를 받기 위해 뒤늦게 사실혼 관계임을 직접 밝혀야 했고, 그제야 접근 금지 조치와 스마트 워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초동대처가 미흡한 경찰의 실책으로 B씨는 사망했다.
도내 한 경찰관은 “현장에서 당사자 관계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입증이 안 되면 즉각 보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며 “즉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관계성 구분에 매달리면 대응이 늦어진다”며 “가정이든 교제든, 가정 내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피해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고 임시보호 조치가 즉시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