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노장 산악인‘ 한만수씨(65·경기도산악연맹 부회장)가 ‘백색의 7대륙’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해발 4천897m) 정상에 ‘경기 혼(魂)’을 심었다. 한만수씨는 산악인 유주면(45·인천대 산악부OB), 김동언씨(26·인천대 산악부)와 함께 경기일보 후원으로 지난 달 7일 2008년 새해 최초로 빈슨 매시프 등정에 성공했다.
▲두려움과 설레임 속 남극 대륙 향발
인천의 ‘젊은 산악인’ 유주면, 김동언과 함께 성탄절인 12월25일 인천공항을 출발, 10시간을 걸려 LA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칠레 산티아고로 향했다.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약 2천200km 떨어진 세계 최남단의 도시인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한 것은 26일 오후 1시(이하 현지시간) 날짜 변경선을 통과한 것을 감안한다면 꼬박 이틀이 걸렸다.
푼타아레나스에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4일간 체류하면서 장비 점검과 함께 전문 가이드로부터 빈슨 매시프 등정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30일 오전 10시 기상상태가 호전 돼 군용 수송기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만에 남극 패트리어트힐(해발 800m)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과 얼음뿐인 말 그대로 ‘백색 대륙’이었다.
빈슨 매시프를 등정하기 위해서는 경비행기로 베이스캠프(해발 2천200m)까지 이동해야 했지만 역시 악천후로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어 3일을 기다렸다.
1월2일 드디어 이륙 허가가 떨어졌다. 1시간30분간 경비행기를 타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빈슨 매시프 정상이 보였다.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로우캠프(2천650m)와 하이캠프(3천715m)
3일 아침 눈을 뜨니 빈슨 매시프 정상의 하얀 눈사이로 검은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반기는 듯 했다.
등정을 위한 물품과 각자 개인 몸상태를 점검하며 휴식을 취한 뒤 LA에서 온 재미교포 이성인씨(61) 등 다른 나라 원정대들과 함께 4일 오전 9시 로우캠프(Low Camp)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방한복을 잔득 끼어 입어 움직임이 둔했고, 개인 장비와 식량 등 물품들로 가득찬 배낭이 어깨를 눌러 젊은 대원들의 페이스를 맞추기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뒤처질 수는 없었다. 반나절의 산행을 거쳐 로우캠프에 도착했다.
로우캠프에서의 첫 날밤은 백야(白夜) 현상으로 밤과 낮의 분간이 되지않아 한 밤중에도 텐트에서 불을 켜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밤이면 기온이 떨어져 ‘이제 밤이 됐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분주하게 하이캠프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숨도 차고 힘도 들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5시간 가량 이동하자 하이캠프(High Camp)가 희미하게 보였다.
산은 오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해 왔지만 정상 등정을 위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니 ‘이제 부터 진짜 등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됐다.
6일 오전 정상 등정을 위한 장비 점검과 짧은 훈련을 한뒤 무사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다.
▲빈슨 매시프 정상 등정의 ‘환희’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7일 오전 9시 모든 대원이 안자일랜(10m 간격)으로 서로를 묶고 빈슨 매시프 정상을 행해 함차게 출발했다.
가파른 설산을 크램폰, 하네스, 스틱, 아이스바, 침낭, 간식 등 온갖 장비를 챙기고 오르기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등정을 시작한지 5시간이 지날 무렵 고도 4천200m 지점에서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고, 빈슨 매시프는 정상 등정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좌측으로는 써브람(4천865m)봉 우측으로는 빈슨 매시프로 오르는 스위치백 설사면 사이의 안부(4천700m)는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화이트 현상이 일어나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어 선두에 선 가이드 크리스(Cgres)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얼마를 가다가 두 스틱에 의지해 오르던 것을 스틱과 아이스바를 동시에 사용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의 개념을 잊은 채 포기하려고 생각하던 순간, 눈보라 속에서 돌출 바위부분이 나타났다.
거센 눈보라로 저항하던 빈슨 매시프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300m 정도의 산등성이를 따라 가면 빈슨 매시프를 정복하게 되지만 좌우 절벽 사이의 눈보라 속에서 서로에게 묶인 자일을 의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가이드 크리스의 “정상이다!”라는 외침이 터졌지만 후려치는 눈보라 속에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하이캠프를 출발한지 9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대원 모두가 눈썹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고 손은 동상에 걸린 듯 했고, 카메라는 얼어붙어 하나도 작동이 되지않았다.
좌측 써브람봉, 우측 브람스콤(4천520m)봉 사이 ‘빈슨 매시프봉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여기 한 조각의 바위끝을 오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많은 것을 투자해 이 곳에 온 것이었나?’. 만감이 교차했다.
추위도 잊은 채 가슴이 뭉클하면서 두 눈에 눈물이 쏟아졌다. 감격을 느낄 새도 없이 가이드의 재촉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좌우 절벽의 산등성이를 내려 오려는 순간 뒤에서 소리가 나며 자일이 땡겨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반대편을 날렸고 아이스바를 바닥에 힘껏 찍었다. 후미에 있던 김동언, 유주민 두 대원이 절벽에 추락한 것이다. 30여분간의 사투끝에 두 대원을 끌어 올린 뒤 하산을 재촉했고, 밤 11시께야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밀려오는 피로에 텐트 침낭속으로 자연스럽게 몸이 빨려 들어갔다. 아침에 먹은 컵라면 하나로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를 오른 것이다.
고독과 외로움, 살인적인 남극의 추위, 살을 에는 듯한 바람, 험준한 빈슨 매시프의 고봉도 경기인의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을 결코 막지 못했던 것이었다.
/최원재기자 chwj74@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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