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 119가 있다. 여기서 폭로한 직장갑질의 예가 충격적이다. 한 제보자는 회사 상사로부터 허리띠로 맞았다. 회식 자리에서 뱀 춤을 춘다던 상사의 횡포였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부인이 보는 앞에서였다. 회식 자리에서 소주병으로 위협받은 제보자도 있다. 수 초간 목이 짓눌리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고객들이 쳐다보는 영업장에서였다. 일반인이 들으면 몸서리를 칠만 한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직장갑질 고발이 급증하고 있다.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사건 이후다. 직장갑질 119에 접수되는 신고건만 이달 들어 50% 이상 늘었다. 신고되는 갑질의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의 신고 내용이 ‘참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알고도 넘어가 주던 수준’으로 넓혀졌다. 업무와 무관한 지시를 하는 행위,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 등이 모두 신고 대상이 되고 있다. 현실 인식이 그만큼 바뀐 것이다.
직장 갑질에 대한 사회적 판단은 상당히 관대했었다. 조직 적응력을 높이려는 속칭 ‘군기 잡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신입 사원 체벌, 집단 폭행, 강제 술 먹이기, 퇴근 후 불러내기 등이 다 그런 유형이었다. 법(法)도 그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담은 법안이 여러 번 마련되기는 했었다. 2013년부터 10여 건이 발의됐다가 폐기됐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이유였다.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였다.
우리가 여기서 되돌아 보려는 것이 있다. 직장 내 미투 물결의 기억이다. 상사에 의한 성적 발언, 회식 자리에서의 신체 접촉 등도 오랜 세월 ‘감내해야 할 여성 직장인의 숙명’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 미투 운동과 함께 범죄로 전환됐다. 수많은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거나 직장을 쫓겨가는 신세가 됐다. 양진호 사건 이후 직장갑질의 흐름에서 그런 변화를 본다. 범죄로 전환되는 흐름 속에 아슬아슬한 문화 부적응이 엿보인다.
인권 의식에는 특징이 있다. 한 번 높아진 판단의 기준은 절대 원래로 돌아가지 않는다. 직장갑질도 그렇다. 한 번 규정된 갑질행위가 시간이 지난다고 다시 허용되지 않는다. ‘양진호 사건’이 지금 우리 사회의 직장갑질의 허용 기준을 왕창 높여 놓고 있다. 군기 잡기라는 과거의 관용을 인격침해라는 사회적 범죄로 바꿔놓고 있다. 내부 고발과 관계기관 신고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사건화가 잇따를 것이 자명하다.
미투 운동에 적응 못 한 수많은 인사들이 참담한 대가를 치렀다. 직장갑질에 적응 못 하는 수많은 인사들도 패가망신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잘못된 직장갑질를 버려야 한다. 단칼에 무 자르듯 단호히 근절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답지 않은 ‘양진호 사건’이 인간다운 직장인들에 던지는 절절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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