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진나루 ‘진서문’ 원형사진 70여년 만에 빛본다
[단독] 임진나루 ‘진서문’ 원형사진 70여년 만에 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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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연구가 김현국씨, 귀중한 사진자료 본보에 공개
조선시대 의주대로 관문… 1951년 7~8월 소실 확인
그림으로만 추정하다… 파주시 복원 중요한 역할 기대
1946년 초가집인 임진나루마을은 현재의 모습과 현대식 주택형태만 다를 뿐 도로와 집 위치 등이 그대로다.
1946년 초가집인 임진나루마을은 현재의 모습과 현대식 주택형태만 다를 뿐 도로와 집 위치 등이 그대로다.

파주시가 복원을 추진 중인 임진강 임진나루 ‘진서문(鎭西門) ’의 해체 전 원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진 자료가 70여 년 만에 공개됐다.

특히 조선시대 의주대로의 관문 성으로 많은 문인과 사신이 찾았던 진서문은 영조 때(1755) 성문을 쌓고 ‘임벽루 진서문’이라고 명명됐다. 그러나 당시 형태를 알 수 없어 그림 등으로만 추정해 왔는데 이번에 관련 사진이 공개됨에 따라 진서문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화석정과 임진나루를 연구하는 향토연구가 김현국씨(56)는 1940~50년대 초 임진강 임진나루마을과 조선시대 성문 중 대형에 속하는 진서문의 원형과 소실 시기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자료를 발굴해 본보에 공개했다.

1948년 9월 임진나루에서 임진강 도하 준비 중인 미군 M8 장갑차 등이 진서문을 뒤쪽으로 두고 도열 중이다.
1948년 9월 임진나루에서 임진강 도하 준비 중인 미군 M8 장갑차 등이 진서문을 뒤쪽으로 두고 도열 중이다.

김씨가 공개한 사진은 임진나루마을 전경과 진서문의 남쪽과 북쪽 모두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모습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총 5종이다.

사진자료를 보면 1946년 초가집인 임진나루마을은 현재의 모습과 현대식 주택형태만 다를 뿐 도로와 집 위치 등이 그대로다. 특히 1948년 9월 임진나루에서 임진강 도하 준비 중인 미군 M8 장갑차 등이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진서문을 뒤쪽으로 두고 도열 중인 모습,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임진강을 도하한 미군 1기병정찰대가 진서문을 통과해 임진나루마을로 들어오는 모습 등도 있다.

김씨는 “아쉽게도 진서문 위 누각인 임벽루는 없어진 상태인데 일제강점기 초반 민간에 팔아버린 기록이 있다”며 “성문의 상하좌우 크기 및 성곽 하단에 쌓는 아치형태의 홍예기석, 그 위에 쌓은 홍예석과 성문의 상단 양쪽 돌출된 석누조, 홍예문 최상단 중앙에 쌓은 부형무사와 문 옆에 쌓는 돌인 무사단 등은 원형을 확인할 있다”고 말했다.

1950년 10월 임진강을 도하한 미군 1기병정찰대가 진서문을 통해 임진나루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1950년 10월 임진강을 도하한 미군 1기병정찰대가 진서문을 통해 임진나루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진서문의 소실 시기를 알 수 있는 사진도 있다. 1951년 8월 3일 미군이 임진강에 부교를 설치하기 위해 진서문 잔재물을 사용하고 있는 사진과 파괴된 진서문 잔재물이 길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사진도 공개됐다. 이로 미뤄볼 때 진서문의 소실 시기는 1951년 7~8월 임을 알 수 있다.

김씨는 사진 자료를 공개하기 전 1850~1900년대 한국의 사진 찾기, 1906~1950년대 종군기자와 조선총독부 사진, 미군정 사진 자료 등을 확보한 뒤 수차례 현장방문 등을 통해 교차 검증했다.

파주향토연구가 김현국씨는 “파주시민으로서 진서문 복원에 일조할 수 있다면 기쁜 일이다. 파주시가 요청하면 기꺼이 고해상도 사진을 모두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파주시는 지난 2015년부터 문산읍 임진리에서 진서문 터와 성벽을 확인하는 등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951년 8월 3일 미군이 임진강에 부교를 설치하기 위해 진서문 잔재물을 사용하고 있다.
1951년 8월 3일 미군이 임진강에 부교를 설치하기 위해 진서문 잔재물을 사용하고 있다.

파주=김요섭기자
사진=파주향토연구가 김현국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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