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부끄럽고 창피했다
[변평섭 칼럼] 부끄럽고 창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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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최희준의 대표곡이라 할 ‘하숙생’ 가사 일부다. 그는 지난해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요계에서는 보기 드문 명문대 출신에다 매혹적인 저음으로 오랫동안 가요계의 큰 별 역할을 했고 제15대 국회의원에도 진출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 국회의원 한 것을 크게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가 정치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불효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것이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불효를 저지른 것으로 생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주 더불어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21대 국회의원에 불출마를 선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국회의원 공천받으려고 현역이건 정치 지망생이건 눈에 불을 켜는 판에 ‘불출마’ 선언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의원이 밝힌 내용을 보면 이해가 되고 남는다.

그는 ‘양질의 사람이 국회에 들어와도 당의 구속을 받다 보니 이상해진다’라고 했다. 우리 정당정치의 현실을 솔직히 고백한 것 같다.

사실 우리 정치풍토에서 소신 있게 의정 활동 하기는 어렵다. 당의 방침과 다른 소신 발언을 할 경우 벌떼같이 문자 폭탄을 퍼붓는 정치 환경이 대표적 예다.

김해영 최고위원도 지난 16일 ‘광장 정치’ 가 일상화된 현실에 대해 집권 여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대단히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가 문자 폭탄을 맞았다는 보도도 그런 것이다.

같은 당의 금태섭 의원 역시 소신 발언을 잘했는데 이번엔 당에서 추진하는 공수처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역시 저항을 받는 것 같다. 금 의원은 공수처 설치는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이며 권력기관인 사정기구를 또 하나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는 것.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바둑계의 황제로 불리던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 역시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데도 이와 같은 우리 정치현실과의 내적 갈등 때문이 아닐까?

조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바둑은 고수(高手)였지만 국회의원으로서는 하수(下手)였다며 “나 같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가 타협이란 게 없고 흑백논리로 모든 게 정해지는데 그걸 알았다면 애당초 안 했을 것”이라 했다.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이런 분위기 속에 이철희 의원은 아예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해 버리니 놀랄 수밖에 없다. 이철희 의원은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그리고 국정감사장에서 연출되는 해프닝들에 크게 실망한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정치는 공동체의 해악이다.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어느새 저도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이런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그러면서 “부끄럽고 창피하다”라고 했다.

숨김없는 양심의 소리다. 이와 같은 양심을 가진 정치인들이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빠져나오는 것은 우리 정치발전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실망하고 출마를 포기하는 국회의원이 늘어나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치풍토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성과 고뇌의 모멘텀이 되어 줄테니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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