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포용과 관용의 ‘진보’를 바라며

우리 정치사에서 ‘진보’란 말은 1958년 조봉암을 대통령선거 후보로 내세웠던 진보당에서 시작됐다. 조봉암이 사형당한 후 진보란 용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1987년 백기완 후보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후 대학 운동권의 주류였던 민족해방 계열이 정치권에 대거 등장하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요직에 등용돼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때부터 한국 정치사에 진보라는 용어가 자리를 잡았다. 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진보라기보다는 실사구시를 표방하는 혁신정치세력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그들은 전문가 집단과 자기 진영과의 조합을 통해 국가를 개혁하려는 세력이었다. 최고의 전문가와 기업인의 도움을 받아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이란 걸출한 대통령의 능력과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외부세력을 거부하는 진보는 그 진정성을 의심해야 한다. 전문가를 ‘적’으로 대하는 진보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진보는 민생과 국가 발전보다는 권력 장악에 중심을 둔다.

진정한 진보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공조하는 지혜가 있지만, 위선적 진보는 진실을 가리고 국민을 오도해 굴절의 역사로 몰고 간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나라 안팎이 난리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온 국민은 불편을 감수하며 인내를 했고 민간 의료진이 전국에서 자원봉사에 동참했다. 그러나 정작 책임을 통감해야 할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여러 망언을 토해냈다.

정작 국민과 민간 의료진의 노력과 봉사로 이뤄진 “한국이 새로운 방역 모델이며 새로운 모범과 표준”이란 외신의 평가마저도 자신들의 업적으로 돌린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으로는 독재 파쇼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뤄냈고, 경제적으로는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는 경제 강국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는 건국의 기본 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덕분이다. 성장 과정에 따른 필연적인 부작용인 사회 양극화와 기회의 불균형도 문제로 대두했지만 이를 없애기 위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필요했다. 그들은 포용과 관용의 정치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놓아 정치권에 진입한 일명 ‘586’이 대한민국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586’들은 진영 대결의 차원을 떠나 품성 붕괴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다. 국민의 최종 병기는 ‘투표’다. 마스크를 사려고 오늘도 줄을 서는 국민이 투표소에 줄을 서 어떤 선택을 할지 두려워해야 한다. 국민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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