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의 더클래식] 일찍 시작한 만큼 일찍 마감된 음악 인생
[정승용의 더클래식] 일찍 시작한 만큼 일찍 마감된 음악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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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연주하는 곳이라면 언제나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천재성. 수많은 음악가를 좌절하게 하고 또 모든 음악가들의 부러움을 샀던 그 천재성. 하지만 그 천재성이 모차르트에게 큰 불행을 가져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세계를 무대로 연주력을 뽐냈던 모차르트는, 청년기를 맞으며 많은 고민과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스무 살 이후부터 그의 삶은 불행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그 불행은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이어졌다.

모차르트에 대한 세간의 주목도 그가 나이를 먹자 함께 사그라졌다. 청년 모차르트는 사랑했던 여인과 아버지의 반대로 이별해야만 했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여인과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또 생계를 위해 소나타, 실내악, 교향곡, 협주곡, 심지어 종교음악까지 닥치는 대로 작곡을 했지만 늘 가난했다.

곤궁한 생활은 그의 몸을 약하게 만들었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됐다. 미완성으로 남겨진 레퀴엠을 작곡하던 어느 날 모차르트는 과로와 병마에 시달리다 마침내 1791년 12월 5일, 서른다섯의 나이로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꽃같이 젊은 천재 음악가의 시신은 제대로 된 묘지에 묻히기는커녕 거의 버려지다시피 매장됐다.

훗날 사람들은 그에게 제대로 된 묘를 만들어 주려 하였지만, 이미 사간이 많이 흘러 도대체 그가 어디에 버려졌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버려졌다고 짐작되는 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렇게나마 모차르트를 기념하고 있다.

하이든과 더불어 빈 고전파 양식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작품의 폭과 깊이에서 다른 사람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이룩했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그의 생가가 있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가면 모차르트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열쇠고리, 옷, 인형, 심지어 초콜릿 상자에도 모차르트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매년 모차르트 음악 페스티벌이 열려 세계의 쟁쟁한 음악가들과 음악 애호가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있다. 마치 도시 전체가 그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모차르트가 우리에게 남겨 준 음악 선물에 비한다면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음악의 아름다움과 음악이 간직하는 따뜻한 메시지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눈다면 결국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는 오늘도 우리를 향해 노래하고, 진한 감동과 위안을 선사하고 있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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