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산업단지에 불이 꺼지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쳐 공장을 팔고 폐업하는 업체가 늘어나면서다.
더욱이 대다수가 자동차와 가전, 휴대폰의 부품ㆍ소재를 공급하는 업체여서 경기도의 제조업 생태계가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안산시와 시흥시 내 위치한 반월ㆍ시화국가산업단지. 중소제조업체 1만7천여곳이 모인 국내 최대 규모 산업단지인 이곳의 도로변에는 공장을 매매ㆍ임대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공장 급매ㆍ임대’라는 일반적인 문구부터 ‘마스크 공장 매매’ 등 최근 주목받는 업종을 내세워 홍보하기도 했다.
자동차 부품업체가 있었던 한 공장의 우편함에는 먼지 덮인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인근 골판지 제조 공장 직원 K씨(44)는 “거기 있던 공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잘 돌아갔는데 올해 들어 몇 달 만에 싹 망해버렸다”며 “내년에는 공장 3곳당 1곳 꼴로 폐업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떠돈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의 공장 10곳 중 4곳이 멈춘 상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국가산업단지 산업동향을 보면 지난 7월 기준 시화공단의 가동률은 66.7%, 반월공단의 가동률은 67.1%로 집계됐다. 특히 반월공단의 경우 지난해 7월 가동률(74.9%)과 비교하면 7.8%p가 하락하고 생산액도 1천억원 이상 줄었다.
시화공단 매물을 취급하는 부동산 중개사 L씨(57)는 “폐업하는 업체도 많고, 생산량이 줄면서 사용하지 않게 된 공장을 매물로 내놓는 기업도 많은 상황”이라며 매물이 많아 3.3㎡당 임대료도 2만7천원대에서 2만1천원대까지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이날 법원경매 정보사이트 굿옥션에 따르면 올해 1~8월 경기도 내 공장 및 공장용지의 경매진행건수는 739건, 그중 낙찰건수는 195건으로 집계됐다. 경매진행건수 대비 낙찰건수 비율인 낙찰률은 26.3%다. 경매진행은 지난해(721건)에 비해 다소 증가한 반면, 낙찰건수(212건)는 감소했다. 공장 매물은 늘었지만 공장을 매입하는 기업은 줄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공장 매물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공장 경매 매물은 통상적으로 사업주가 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나오는데, 대출 원리금 연체 발생 수개월 뒤 이뤄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등으로 올 초부터 경기가 나빠진 것을 감안하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장 경매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아람 공장경매전문연구소 팀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버틸 만큼 버티다 결국 폐업 절차를 밟는 업체들이 은행에 경매 신청을 하면 6~9개월이 흐른 뒤 매물로 나온다”며 “연말이나 내년 초께 공장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공단의 쇠락은 경기도 제조업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존폐위기에 놓인 중소기업들은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기업이고,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강소기업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지역본부장은 “제조업체의 어려움은 국가 경제의 어려움과 직결된다”며 “주 52시간 보완입법과 외국인 근로자 입국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 제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지자체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했다.
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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