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성호 이익의 밥상
[문화카페] 성호 이익의 밥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밥상, 이보다 정겨운 말이 또 어디 있을까. 밥, 국, 반찬 등이 펼쳐진 밥상을 보면 습관처럼 숟가락 젓가락을 찾아 집어 들게 된다. 밥은 살아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선호하는 첫 번째 음식이요 없어서는 안 되는 보약이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이 태어나서 7~8세까지를 바른 생활습관과 체벌로써 이력을 세우도록 했으며 특히 밥상 앞에서 비교 시비 따지지 않는 슬기를 배우고 길들여 일생을 좌우하는 품성과 인격이 결정되도록 했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숙종 7년)~1763년(영조 39년)은 조선 문화의 전성기인 18세기 전반 영조대에 활약한 재야 지식인이다. 이익의 실학사상 요지는 아름다운 문장이나 시문에만 매달리지 말고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실제로 유용하고 실효성 있는 학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호 선생은 아버지 이하진이 경신환국 때 평안도 운산으로 유배된 곳에서 태어났으나 두 살 때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별세하자 어머니 권씨(權氏) 부인과 함께 안산 첨성리(지금의 일동)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와 살게 됐다.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어려운 집안과 오랜 질병으로 말년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 빈한한 처지가 돼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성호사설, 곽우록, 성호 선생문집, 이선생예설, 사칠신편, 이자수어 등 실로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그가 저술한 성호사설에는 “곡식이란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그중 콩의 힘이 가장 크다”고 해 콩을 반이나 섞어 지은 콩밥을 예찬한 시 반숙가(半菽歌)가 있다. 콩은 나의 논이나 밭이 없어도 주위 논두렁 밭두렁 한쪽에 심으면 줄줄이 많은 수확을 할 수 있는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리는 고단백 식품이다. 동의보감에도 콩으로 만든 요리는 질병을 예방하고 두뇌발달에 좋을 뿐 아니라 오장을 보호하고 위장관을 따뜻하게 하는 장수 식품이라고 했다.

안산은 성호의 도시이다. 그것은 이익 선생의 화포잡영(華浦雜詠:지금의 본오동, 사동, 성포동 일부가 모두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었으며 이 갯벌을 화포라고 했다)이라는 시에서 볼 수 있다. “저 넓은 갯벌에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소금기를 없앤다면 광활한 옥토가 되어 농토가 없어 굶어 죽는 백성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니 좋은 계책 백성에게 물어 이루라”라고 읊은 것이다. 이익 선생의 간절한 이상이 200여년 후인 이제야 이뤄져 안산 시민들이 바다를 메워 아파트를 짓고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풍요롭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호 이익의 밥상은 콩을 재료로 한 밥, 국, 삼찬만의 소략하고 검소한 선비의 밥상이다. 조선 왕조가 설정한 선비는 학예일치(學藝一致)를 이룬 자라 했다. 성호 이익이 기반을 다지고 한 번도 뵌 적이 없으나 성호 선생의 책을 읽고 실학을 완성한 유배지 강진의 다산 선생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안산의 밥상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