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융투자 최한용 팀장입니다.”
#1. 대출을 알아보던 황씨(37ㆍ여)는 최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2금융권을 사칭한 ‘그놈 목소리’는 기존 대출금을 정산하면 낮은 이율로 더 많은 돈을 빌려주겠다고 꼬드겼다. 깜빡 속아버린 황씨는 전화기 너머에서 시키는 대로 어플을 설치했다. 겉보기엔 은행 어플처럼 보였지만 막상 실행해보니 어딘가 어색했다. 뒤늦게 이상한 낌새를 느낀 황씨는 금융감독원에 신고했지만 ‘문제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지난 12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은행 앞에서 은행 직원이라는 남성에게 현금 5천만원을 건넸다. 그러나 황씨에게 전화를 건 은행 직원도, 황씨의 전화를 받은 금감원 직원도 모두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2. 안산시 단원구에 사는 임씨(56)도 비슷한 수법으로 당했다. 3번에 걸쳐 돈을 뜯긴 그는 총 1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애초 기존 대출금을 갚을 목적으로 현금 2천만원을 내준 임씨는 이후 금융감독원이라며 걸려온 전화에 다시 속고 말았다. ‘지금 당장 대출을 정산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하락한다’는 협박성 경고에 연달아 돈을 내준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매년 늘어나는 가운데 그 수법까지 고도화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기지역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7년 5천624건에서 2018년 8천697건, 2019년 9천433건, 2020년(8월) 5천205건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같은 기간 피해액 역시 2017년 555억원에서 2018년 990억원, 2019년 1천585억원, 2020년(8월) 1천116억원으로 매년 수백억원씩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돈을 갈취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대출금을 모두 갚으면 저금리로 고액 대출을 해주겠다는 이른바 ‘전환대출’ 수법이다. 이 말에 속은 피해자는 기존 대출금을 갚으려다 그 돈을 모두 보이스피싱 조직에 내주게 된다. 올해 1~8월 경기도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5천205건 중 79.8%에 달하는 4천153건이 모두 대출사기형 범죄였다. 피해액은 무려 802억원에 달한다.
더구나 그 과정마저 기술적으로 고도화되면서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주로 대출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라며 악성 어플의 설치를 유도한다. 실제 생김새는 기존 은행 어플과 매우 유사하지만, 이를 설치했다간 개인정보가 모두 빠져나가고 위치까지 추적당할 수 있다. 심지어 금감원이나 검찰, 경찰 등 관공서나 금융기관으로 연결되는 모든 전화가 해킹 과정을 거쳐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연결되는 탓에 피해 신고마저 어려워진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모르는 상대에게 개인정보를 쉽게 내주지 않는 경각심이 가장 중요하다”며 “경찰과 금융 당국의 적극적인 단속이 필요하고, 이 같은 피해사례를 지속적으로 홍보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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