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코로나19와 결혼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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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여고 동창생이 9월 중순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한다고 알려왔다. 예비 신랑ㆍ신부의 아름다운 웨딩사진이 담긴 모바일 청첩장을 보며 친구에게 아들 키우느라 수고했다고, 축하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식은 예정된 날짜에 열리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서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은 위약금을 물고 내년 봄으로 미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삶 곳곳에 충격을 줬다.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 실시한 지난 4월 혼인 건수는 1만5천670건으로, 1~3월 평균(1만9천여건)보다 3천300건 정도 적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20% 이상 낮다. 1년 중 결혼이 가장 많은 달인 5월에도 혼인 건수는 1만8천여건에 그쳤다. 전년도 5월보다 20% 줄었다. 예년 같으면 9, 10월에도 결혼이 많은데 올해는 거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엄격한 방역 지침에 예비부부들이 결혼식을 미루거나 취소한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예식장과 위약금 관련 다툼이 크게 늘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9월에 예식장 예약 취소 관련 분쟁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결혼식장 계약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코로나 방역 지침으로 결혼식을 미루거나 취소할 경우 위약금을 안 내도 된다는 내용이다.

결혼식이 어려워진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결혼식 하객 수를 제한하는 주(州)가 많다. 영국은 최근 ‘하객은 15명까지, 음료ㆍ음식 섭취 금지, 노래는 되지만 환호 유발은 안됨’ 등으로 결혼식 지침을 까다롭게 업데이트했다.

결혼이 미뤄지면 당사자들이 힘들지만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 예식업ㆍ미용업 등 결혼과 직결된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 신혼부부가 가정을 꾸리기 위해 구매하는 여러 제품 수요도 없어진다. ‘사라진 결혼’은 우리나라에 더 치명적이다. 그렇잖아도 심각한 출산율이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혼외 출산이 거의 없어 결혼이 사라지면 출산도 줄어든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 2분기 0.84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 충격의 가장 장기적인 흔적은 미뤄진 결혼으로 인한 출산 급감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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