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21세기 기생충
[변평섭 칼럼] 21세기 기생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무성하던 참나무 숲이 이제는 나목(裸木)으로 겨울 추위를 버티고 있다. 조금 있으면 참나무는 잎을 다 떨구겠지만, 가지 여기저기 황록색의 새 둥지 같은 것이 찬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죽은 것처럼 검은 가지에 얹어 있는 황록색의 둥지는 보기에도 좋다. 알고 보니 그것은 겨우살이과의 상록 ‘기생관목’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참나무, 밤나무, 팽나무 등에 빨대를 꽂아 겨울을 나는 말하자면 기생충 같은 것이다. 꽃이 피어 열매도 맺는데 새들이 그 열매를 먹고 여기저기 번식까지 시킨다니 고급 기생목(寄生木)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지구의 모든 생물체는 숙주(宿主)에 붙어사는 기생충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왕성한 저서활동과 방송출연 등으로 세인의 관심이 높았던 혜민스님이 뜻밖에도 같은 수행승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국적의 현각스님으로부터 ‘기생충 같다’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 언론을 장식했다. 현각스님은 혜민스님을 가리켜 ‘연예인’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기생충’이라고 까지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혜민스님은 모든 활동을 접고 수행에 전념하겠다며 지난 11월15일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참회의 글도 남겼다. 물론 현각스님도 하루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고 혜민스님을 칭송하는 글을 발표했지만, 그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풍파를 일으킨 현각스님의 경솔함을 비판하는 소리도 높다. 그러나 신성한 종교계에서 ‘기생충’이라는 말 자체가 등장하는 것이 시민들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 환전상들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유대교에서 그 당시 백성이 성전에 바치는 속죄 제물 등, 각종 제물을 비둘기나 양 같은 짐승 대신 돈으로 환전하여 바쳤는데 이 순수한 신앙행위가 부패와 타락의 방법으로 변질됐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 환전상이나 물건 파는 제도가 성전의 ‘기생충’이 되어버렸고 그 제도권에 있던 지도층과는 먹이 사슬 같은 고리가 형성됐던 것.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강하게 질책했던 것이다. 하지만 숙주와 기생충이 고리가 형성되어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수석 사제와 율법학자, 백성의 지도자들은 위기를 느껴 예수님을 없앨 방도를 모색했을 것이다. 여기서 ‘백성의 지도자들’이란 정치인에 해당될 것 같다.

옛날 궁궐에는 내시, 환관들이 있었다. 남성을 상실한 이들은 남자로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여자 쪽에 끼지도 못하는 특이한 존재. 그러나 왕과 왕족들 사이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과 같은 환관들이었지만 오히려 왕권과 공생하기도 하고 국정을 조종하는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왕권에 기생하여 매관매직의 통로가 되는가 하면 심지어 왕이 후궁의 침소에 드는 것까지 음습한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왕비와 후궁들도 환관의 눈치를 보거나 뇌물로 매수하는데 그러니 궁궐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없었다. 또 왕은 정상적인 계통을 통해 정보를 받기보다 환관들로부터 은밀한 신료들의 신상 정보를 얻었고 그래서 기생충과 숙주는 공생을 즐기며 타락해 갔다. 백성을 섬기고 국가를 번영케 할 궁중이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처럼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기생충은 어디에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다며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기생충도 있고,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 노동, 난민, 동물 보호, 연예계, 경제시장, 그리고 마침내 종교에 까지도 음산한 뿌리를 내린다.

기생충은 앞으로도 더욱더 넓고 깊게 번져나갈 것이다. 그것들이 숙주 위에 군림하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