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4.남양주 서호미술관
[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4.남양주 서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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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변 한폭의 그림같은 ‘힐링공간’
인사동서 ‘갤러리 서호’ 운영하던 홍정주 관장 탈서울 결심
지방학생 원정관람 불편 덜어주려 ‘다가가는 미술관’ 실현
격자창이 멋스러운 1층 전시실 사계절 풍경 감상 명당자리
2층 오르면 100석 규모 레스토랑 ‘더 서호’ 또 한번의 감동
이달 31일까지 초대 기획전 ‘윤석경과 정혜례나의 Calling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에 맞춰 기획됐다.
이달 31일까지 초대 기획전 ‘윤석경과 정혜례나의 Calling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에 맞춰 기획됐다.

건축물은 종합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혼이 깃든 작품을 기획 전시하는 미술관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터를 잡고 땅을 다지는 것부터 주춧돌을 깔고 기둥을 세우고 창문을 내고 지붕을 이며 실내 인테리어를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 주인의 생각과 바람이 곳곳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미술 작품을 보기에 앞서 그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의 외관과 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건축물은 건물을 지은 사람의 미의식과 내면의 풍경이 오롯이 담긴 종합작품이기 때문이다.

■ 흐르는 강물처럼

서호미술관(관장 홍정주)은 북한강이 흐르는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로 1천344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20여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 ‘갤러리 서호’를 운영하던 홍 관장은 지방의 학생들이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오는 것을 보면서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미술관’을 구상했다. 3년의 공사를 거쳐 2001년에 개관한 서호미술관은 홍 관장의 어머니(이은주, 87세)의 역할이 컸다. 이은주 여사는 1967년부터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민예사’를 운영하며 50여년 동안 전통 목가구를 제작한 사업가이자, 30여년 동안 한지 예술을 펼친 작가이기도 하다.

서호미술관은 한강의 흐름처럼 유유자적하다. ‘강호가도(江湖歌道)’, ‘북한강을 바라보며’, ‘산수심원기(山水尋源記)’, ‘실타래, 풀어내다’ 등 기획전의 이름도 한강의 흐름을 닮았다. 2020년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의 이름이 ‘판, 접고 펼치다’인데 문화예술판을 꽁꽁 얼어붙게 한 코로나 정국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것이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격자창이 멋스러운 1층 전시실은 사계절 변화하는 북한강의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5m 높이의 전시실은 대형 작품을 설치하기에 넉넉하고 관람하기에 편안하다. 원형 나무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르면 100석 규모의 대형 레스토랑이 나타난다. 한옥의 들보와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이 장관인 레스토랑 ‘더 서호’는 또 하나의 특별 전시실이다. 품격이 느껴지는 원목테이블과 장식용 소품들은 대부분 ‘한국민예사’에서 제작한 전통 목가구들이다. 예술의 멋과 음식의 맛은 아주 가까운 사이다. 식사 후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거닐며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2001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변에 문을 연 서호미술관은 복합문화전시공간으로 개관이래 꾸준히 전시와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2001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변에 문을 연 서호미술관은 복합문화전시공간으로 개관이래 꾸준히 전시와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 초대 기획전 ‘윤석경과 정혜례나의 Calling전’

12월5일부터 서호미술관의 초대 기획전 ‘윤석경과 정혜례나의 Calling전’이 열리고 있다. 짐작하듯 이 전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에 맞추어 기획된 것이다. 윤석경과 정혜레나 두 작가의 공통점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Calling’은 ‘하느님의 부르심’일 것이고, 전시된 작품은 그에 대한 작가의 응답일 터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도자골 달뫼’를 운영하는 윤석경 작가는 한국예술치료학회에 소속된 1급 예술치료사라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에서 입체미술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혜레나 작가는 강원도 홍천에서 ‘헬레나 조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두 작가 모두 19회의 개인전을 열고 100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한 중견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십자가를 주제로 작품을 출품한 윤석경 작가의 ‘작업노트’에서 찾아본다.

“작업은 할수록 탄력이 붙는다. 고로 신간 개념도 없다. 내가 여자고 늦은 나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그 순간 다른 이의 시선이나 의식조차도 개의치 않는다. 오직 작업뿐, 이 순간 너무 행복하고 나만의 시간, 세계가 좋다. … 실패는 또 다른 기법을 가르쳐 준다. 잘못된 작업으로 인해 그동안 안 해본 기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작업 중 느끼는 감성, 감각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살아온 연륜이나 작업을 해 온 세월로 인해 더욱 농축된 작업을 할 수 있다.”

정혜레나 작가는 르네상스 시대를 연 최초의 인문주의자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의 “확실한 사실인 죽음과 불확실한 사실인 죽음의 시간 어디서나 항상 임박해 있는 죽음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작가 자신의 일상과 사명의식을 고백하고 있다.

“이른 아침, 맑은 햇살이 투명하게 내려앉은 저의 퀘렌시아(Querencia:안식처)인 작업실은 커피콩 가는 소리와 고요한 묵상으로 시작됩니다. 어제의 나는 소멸되고 새로운 자아의 탄생을 소망하는 시간은 그분이 허락하신 상상의 지평을 기웃거릴 수 있는 찰나입니다. 무심한 철판 위에 상상의 조각들이 뚜욱~뚝 떨어집니다. 작가는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로써 존재의 의미를 갖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설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설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일지이자 고백록이라 할 ‘작가노트’를 읽으면 작품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폭이 한결 넓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단조로운 삶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작가들이 오랜 시간 인내하며 제작한 작품 앞에서 관객인 우리는 내면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마련이다.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기도 하고, 영감을 받기도 한다. 삶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을 기르려면 미술 작품을 자주 마주할 일이다. 특히 신앙을 가진 작가의 작품은 잠들어 있는 인간 내면의 영성을 깨우는 힘을 발휘한다.

■ 양옥과 한옥의 조화, 미술관 본관과 서호서숙

‘서호서숙’은 홍 관장의 할아버지가 남긴 고서를 보관하기 위해 경남 하동의 장원석 대목장을 초빙해 2018년에 지은 한옥이다. “‘서호(西湖)’는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의 아호랍니다.”

서호서숙은 마당을 활용하기 좋은 ‘ㅁ’자 구조가 특징이다. 섬돌을 딛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수 백개의 조각을 이은 커다란 천에 달항아리를 표현한 작품이 걸려 있다. 대나무로 만든 자리에는 장식이 화려한 해주반과 12각호족반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반상이 놓여 있고, 벽에는 천에 염색한 작품이 걸려 있다. 고품격의 소가구들이 단정하게 전시된 대청마루를 지나자 안방이다. 혼례에 입었던 고운 한복이 걸려 있고 단아한 찻상이 놓여 있다. 건넌방 좌우에 운치 있는 나무 침상이 놓여 있다. 사랑방 책장에는 홍 관장의 조부의 손때가 묻어 있는 ‘서애문집’을 비롯한 고서가 가득하다. 개관을 기념해 ‘여기, 지금’이라는 주제로 전통과 현대의 간극을 아우르는 7인의 공예전을 열었던 사실을 들려준다. 서호미술관과 서호서숙은 할아버지의 정신적 유산과 어머니의 예술적 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홍 관장은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로 일하면서 홍익대 대학원에서 ‘조선왕조시대의 제구(祭具)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던 전통공예에 관한 전문가이다. 홍 관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다양한 공예작품을 좀 더 자주 전시할 계획”이라고 대답한다. 집안의 내력과 전공은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공예주간을 맞이해 서호미술관 한옥에서 개최된 ‘차 한잔의 여유’ 전시회 모습.
공예주간을 맞이해 서호미술관 한옥에서 개최된 ‘차 한잔의 여유’ 전시회 모습.

■ 남양주, 강줄기를 따라 예술과 역사가 숨 쉬는 곳

남양주에는 서호미술관을 비롯해 수준 높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여럿이다. 2018년부터 서호미술관을 비롯한 남양주의 실학박물관, 남양주유기농박물관, 모란미술관,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 우석헌자연사박물관, 프라움악기박물관 등 7개의 박물관·미술관이 ‘남양주 문화시설 활성화 및 공동홍보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남양주 뮤지엄 투어패스’를 시작했다. 입장권 하나로 남양주의 대표 박물관을 모두 입장할 수 있는 사업이다. 아울러 전시가 끝나면 폐기되는 설치물이나 구조물의 재활용과 공유화 방법과 각 기관에서 관리하는 회원을 통합 관리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단다. 소통과 협력으로 남양주의 문화예술의 지평은 더욱 넓혀지고 있다.

연말이다. 미술관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내면과 마주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영원을 꿈꾸며 신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빚어낸 조각가 윤석경과 정혜레나의 작품에서 오늘을 성찰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가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는 일도 빠트리지 말자.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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