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의 더클래식] 음악가에서 성직자가 되기까지..“프란츠 리스트”
[정승용의 더클래식] 음악가에서 성직자가 되기까지..“프란츠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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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의 파리 입성은 파리 사교계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는 피아노란 악기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더불어 피아노 음악에 대한 관심과 가치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 절묘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헝가리 출신의 순박한 청년인 리스트가 그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소문은 소문을 만들고, 그의 연주회장은 연신 북새통을 이루었다. 특히 여자들은 그이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목했고, 돈 많은 부유한 여자들의 유혹은 음악보다 진했다. 그리하여 리스트는 여자들과의 구설수로 얼룩진 삶을 시작한다.

리스트가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였다 하더라도, 도덕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의 젊은 날은 올바른 삶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방황하던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1863년 52세의 나이에 지금까지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가톨릭 사제로 귀의하여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사제의 옷을 입은 메피스토’라고 비아냥거렸지만, 리스트는 마치 방탕한 젊은 날에 대해 속죄하듯 이때부터 수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하며 새 삶을 꾸려나갔다.

리스트는 28세이던 1839년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1886녀까지 47년간 빈, 마드리드, 아일랜드, 러시아 등 전 유럽을 돌며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비록 헝가리 출신이었지만 빈에서 클래식을, 파리에서 새로운 기교를, 이탈리아에서 문학과 그림을, 스위스에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본 그는 그야말로 세계인의 문화를 몸소 체험했고, 이는 음악으로 하나하나 나타나게 됐다.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 프레데리크 쇼팽,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이 가지고 있던 음악적 장점들을 모조리 갖추고 음악적 최고점에 도달했던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 로베르트 슈만, 프레데리크 쇼팽, 펠릭스 멘델스존 등처럼 요절한 동년배 천재 음악가들과 달리, 별다른 잔병치레도 없이 대단히 건강하게 장수해서 동기 중 몇 안 되게 초, 중~후기 낭만파 일대를 전부 풍미할 수 있었던 음악가이기도 했던 프란츠 리스트. 그는 “어떤 명예나 칭찬도 중요하지 않지만 단지 내가 가진 창을 미래의 공간 속으로 던질 수 있다면 음악가로서 더는 바랄 것이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1886년 7월 30일 세상 밖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리스트가 던진 ‘창’은 그가 죽은 지 1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강하게 박혀 있다. 당할 자 없는 화려한 연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킨 리스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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