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6.이천시립월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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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거장 장우성 화백...작품세계 고스란히 간직
서울 사립 월전미술관 소장품 1천532점
이천시에 기증 시립미술관으로 재탄생
시·서·화 화폭에 농축… ‘문인화’에 탁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도 장 화백 작품
2020년 겨울 기획전 <송하보월松下步月>
유윤빈 등 작가 9명 소나무 작품 선보여
이천월전미술관 후원에 위치한 월전 장우성관에서는 장우성 화백의 밀랍인형과 화실을 만날 수 있다. 평생을 한국화를 위해 헌신한 장 화백은 아산 현충사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등 유명한 작품을 그렸다. 윤원규기자
이천월전미술관 후원에 위치한 월전 장우성관에서는 장우성 화백의 밀랍인형과 화실을 만날 수 있다. 평생을 한국화를 위해 헌신한 장 화백은 아산 현충사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등 유명한 작품을 그렸다. 윤원규기자

이천시립월전미술관(관장 장학구)은 이천시 경충대로 2천709번길 185 설봉공원 내 설봉산(雪峰山) 자락에 위치한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은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6ㆍ25전쟁을 겪는 등 암울한 시대를 살다간 한국화의 거장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미술관이다. 월전 장우성 화백은 1989년 한국 화단을 위해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하여 평생 그린 작품과 한국 전통 미술의 연구 및 우리 문화재의 보호를 목적으로 수집한 회화, 서예, 도자, 금속공예, 불교미술품, 국내외 고미술품 등을 재단에 기증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1991년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에 사립 월전미술관을 건립했다. 이후 평생의 업적이 사적(私的)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공익(公益)을 위해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지막 유지(遺志)를 남기고 2005년 별세했다. 이에 월전미술문화재단과 유족들은 그 뜻을 받들어 월전미술관 소장품 1천532점을 이천시에 기증함으로써 2008년 이천시립월전미술관으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 들어서면 건물 바로 앞에는 마치 굴곡진 역사를 보는 듯한 소나무 한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월전 장우성 화백의 호를 딴 월전송(月田松)이다. 달(月)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둥근 광장 너머로 소나무(松) 밭(田)에는 빈 공간, 대지의 틈새, 문의 이미지-생명 등의 조각 작품들이 서 있다. 설봉산 여래(如來)계곡을 건너가는 ‘물의 다리’는 학이 비상하는 날갯짓을 모티브로 삼았다. 학이 광장이라는 둥근 달을 품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할 때 월전송은 학의 부리와 같은 모양새로 탈바꿈한다. 평면으로 펼쳐져 있지만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방향을 모색하려 했던 월전의 사유가 물리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듯하다.

건물은 크게 본관과 별관으로 구분된다. 본관 미술관은 전시실로 월전의 작품과 고미술 소장품이 상시 전시되는 2층 상설전시실 3칸과 1층의 기획전시실 2칸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관은 학예사 3명 등 10명이 운영하는 중이다. 별관은 월전관으로 마치 살아서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한 정교한 월전의 밀랍인형이 “동양화는 붓을 들기 이전에 정신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물체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내면을 관조하여 자기의 심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먹빛 속에는 요약된 많은 색채가 압축되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테두리 밖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별관 앞뜰은 조각공원이다. 일생을 ‘그림에 사로잡혀’ 살았던 월전의 흉상 앞에 종이와 붓과 벼루, 지필연(紙筆硯)을 조각해 배치했다. 특히 “문인화의 백미(白眉)”라는 찬사를 받았던 〈가을밤의 기러기 소리 (1998년 작)〉를 화비(畵碑)에 새겼다. 연보비(年譜碑)에는 1912년 충주에서 태어나 2살 때 여주군 흥천면 외사리로 일가가 이사한 것에서부터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에게 그림을 수학하고,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1893~1950)에게 경사(經史)를 배운 내용, 화가로서의 작품활동과 업적 등 월전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장우성 화백의 일대기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상설전시실. 윤원규기자
장우성 화백의 일대기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상설전시실. 윤원규기자

월전은 어려서 한학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회초리를 맞아가며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童蒙先習)이며 소학(小學), 명심보감(明心寶鑑) 등을 두루 익혔다. 그러나 꽃만 봐도 가슴이 설레고 풀향기를 맡고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또한 유난히 달밤을 좋아했다. 급기야 13~14살 때에는 그저 그림만 쳐다봐도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가 되었다. 초상화에 대한 관심은 이천 도립리 엄낙암(嚴樂庵)이라는 선비가 1년에 한 번씩 우암 송시열의 영정을 공개하는 영정봉심(影幀奉審)이라는 행사를 개최할 때 이 행사에 꼭 참석하는 할아버지를 매번 따라나선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림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의 일이다. 우암의 영정을 본 순간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나도 커서 저런 초상화를 한 번 그려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畵脈人脈)고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초상화는 물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의 초상화도 그의 몫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월전의 작품이다. 영정을 그리기 전에 충무공기념사업회 회장 유석(維石) 조병옥(趙炳玉, 1894~1960) 박사는 월전을 불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징비록>과 <충무공전서>를 읽고 충무공의 참모습을 찾아내기를 부탁한다. 또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선비 같다고 해서 나약한 선비로만 그리면 안 된다고 쐐기를 박는다. 그 순간 그것이 바로 ‘담력’이라고 포착하고 그 ‘담력’을 어떻게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눈빛에 ‘위엄’을 불어넣는 방법을 택한다. 또한 이순신 장군 종손 집에 사흘 동안 머무르며 후손의 얼굴 모습, 골격 등도 면밀히 살펴본다. 이렇게 순간의 섬광 같은 깨달음과 현장답사 등의 과정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1953년 제작, 아산 현충사 소장)의 영정은 탄생한다. 이후 충장공 권율 장군(1970년 제작, 행주산성 충장사에 봉안), 다산 정약용(1974년 제작, 한국은행 소장), 강감찬 장군(1974년 제작, 낙성대 소장), 김유신 장군(1976년 제작, 진천 길상사 소장), 윤봉길 의사(1978년 제작, 예산 충의사 소장), 포은 정몽주(1981년 제작, 한국은행 소장) 등의 영정을 그린다. 1990년에는 장보고 장군 영정을 제작하여 중국 산동성 적산 법화원에 봉안한다. 이중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이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상태다.

현재 1, 2, 3 전시실에서는 ‘송하보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장우성 화백에게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현재 1, 2, 3 전시실에서는 ‘송하보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장우성 화백에게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월전은 시·서·화(詩書畵)라는 세 가지 장르를 하나의 화폭에 농축시켜 담아내면서도 활달한 선(線)과 여백을 중시하는 문인화(文人畵)에 탁월했다. 학(鶴)과 인물화와 산수화 등을 먹의 농담(濃淡)으로 점, 선, 면을 화폭에 그리며 여백을 비웠다. 이를 통해 시, 서예, 그림을 온전히 갖춘 전통문인화의 계승에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역임하는 등 한국 화단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그는 또 동물그림을 통해 현실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1998년에 그린 ‘개싸움1’은 인간사회의 비열함과 천박한 세태를 동물에 빗대어 비판한 그림이다. 그의 작품 중 <백두산 천지도>는 국회의사당에 걸려 있고,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 성화 3부작은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새안塞雁>은 대영박물관에, <홍매>는 프랑스 문화성에 각각 비치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문화예술계에 끼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1976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2001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이천시에 위치한 이천월전미술관은 한국화의 발전과 월전 장우성 화백의 작품세계를 보존,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미술관이다. 이천월전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이천시에 위치한 이천월전미술관은 한국화의 발전과 월전 장우성 화백의 작품세계를 보존,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미술관이다. 이천월전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는 지난달 26일부터 2020년 겨울 기획전으로 ‘소나무’를 주제로 두 달여에 걸쳐 <송하보월松下步月: 달빛 비추는 밤 소나무 아래를 거닐다>전을 개최하고 있다. 유윤빈 등 한국화 작가 9명이 소나무 작품 35여점을 출품했다. 권소영 작가는 3m가 훌쩍 넘는 20개의 소나무 패널에 먹으로 소나무를 그렸다. 작가는 나무에 박힌 자연 옹이를 화가의 그림 옹이로 되살려 자연과 인간의 몸짓을 조화시켰다. 유예진 작가는 자연의 본성 그대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를 비비 꼬아 만든 분재(盆栽)를 통해 뒤틀린 인간의 욕망을 고발한다. 기획전은 내년 1월31일까지 전시된다.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는 월전 장우성 화백을 친일 인사로 발표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과 수많은 역사적 위인들의 영정을 그려 금관문화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천시립월전기념관에는 예술의 세계와 역사가 살아 숨 쉰다. 제1전시실의 세한송(歲寒松)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선비정신과 기개를 담았다. 소나무는 선비정신의 상징이다. 이천시립박물관과 세계도자엑스포센터도 근처에 위치하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현충탑과 서희(徐熙, 942∼998) 장군 동상을 에워싸고 이천 출신 애국지사들의 영령도 함께하고 있다. 산야에 뿌리박은 소나무는 그 잎 어느 하나라도 역사의 ‘꿈틀’로 꿈틀거린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권행완(정치학박사·다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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