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40.파주 두루뫼박물관
[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40.파주 두루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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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영 관장 부부 수십년간 수집 민속품 6천점 달해
1998년 박물관 설립… 1970년대 아련한 추억 선사
1전시실 도자기·2전시실 탈·3전시실 의식주 관련 유물
4전시실 영화대본-영사기·5전시실 농기구 등 한눈에
윤원규기자
‘의식주 생활관’에서는 규방, 계량, 목공 용구 등 각종 생활용구가 전시돼 있다.윤원규기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의미하듯 농업은 한국문화의 줄기이자 뿌리다.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으로 농민들이 어울렸던 마을의 축제는 낭비와 미신으로 몰려 타파되었고 민속의 뿌리인 민간신앙을 미신으로 몰았다. 7천년의 농경문화가 근대화란 이름으로 사라지고 있다. 세상은 풍요롭고 편리해졌으나 인간은 더욱 고립되고 생태계는 파괴되었다. 옛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오래된 미래’가 숨어있다. 선조들이 사용하던 옛 물건에 생태적 지혜가 담겨있다.

■ 두루뫼를 향해 부르는 고향의 노래

유년의 추억이 담긴 고향의 풍경은 흑백 사진 속에나 남아 있을 뿐, 고향의 따스한 정서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파주시 법원읍 초리골에 자리 잡은 두루뫼박물관은 고향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다. 1998년에 설립된 두루뫼박물관(관장 김애영)은 세월을 단숨에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농촌의 아늑한 풍경과 아련한 추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박물관을 설립한 소설가 강위수(1941~ ) 선생의 고향은 파주 초리골에서 50여리 떨어진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 동장리 주산동(周山洞)이다. ‘두루뫼’라 불리던 그의 고향마을은 한국전쟁으로 비무장지대가 되어 지금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귀환’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강위수 소설가가 도굴꾼 이야기를 쓰다가 토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영화촬영을 위해 농촌을 찾았다가 생활도구가 버려지고 집과 담장과 굴뚝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는 새참을 나르던 소쿠리, 벼이삭을 훑어내는 홀태, 떡에 예쁜 무늬를 새기는 떡살, 거름으로 쓸 똥오줌을 담는 장군 같은 민속품을 수집했다. 무너진 초가집에서 구해온 문짝까지 대책 없이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다 날랐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사소하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편의 수집 동조하고 박물관을 세우고 관장까지 맡는다. 그렇게 모은 것이 6천점이나 되었다. 민속박물관을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두루뫼’라는 이름에 설립자의 고향 사랑이 묻어난다. 크고 작은 작은 독과 오지와 항아리가 옹기종기 앉아 있는 장독대는 박물관을 둘러싼 초지골 산자락과 잘 어울린다.

윤원규기자
파주시 법원읍에 위치한 두루뫼박물관은 현대화물결에 사라져가는 조상들의 생활용품을 수집해 전시한 민속생활사 박물관이다. 두루뫼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 1천50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공간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흔해서 역사유물로서의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민속생활용품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눈 밝은 부부 덕분에 살아남은 귀중한 유물들이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삼국시대의 도자기부터 타자기, 레코드판 같은 근현대 유물까지 1천500년의 세월을 아우르고 있는 상설전시실을 김애영 관장의 안내로 둘러본다. 박물관은 다섯 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제1전시실은 ‘토기와 도자기’이다. 박물관 설립으로 이끌었던 토기답게 온갖 종류의 토기와 도자기를 볼 수 있다. 백제, 신라, 가야의 회색토기를 비롯해 고려청자와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까지 멋진 도자기를 살펴보며 질문을 던진다. “가장 좋아하는 유물이 어떤 것이에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 굴뚝이에요.” 김 관장은 뚜껑이 씌워진 한길 남짓한 굴뚝을 가리키며 웃는다. 굴뚝도 흙을 구워 만들었으니 토기의 일종이고, 아궁이의 불이 잘 타들어가게 하고 구들을 골고루 덥혀준 연기를 빨아냈으니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똥오줌을 논밭으로 옮기는 용기로 사용했기에 ‘똥장군’으로도 불렸던 장군을 입구에 나란히 진열한 것도 진풍경이다. 70년대만 해도 시골집에 한두 개는 있었지만 지금은 구경하기 어려운 특별한 물건이다. 작은 것에는 물이나 술 따위를 넣으나 큰 것에는 오줌을 담아 지게로 운반했다. 나무장군은 오지장군처럼 깨지지 않는 장점이 있어 공사장에서 물을 져 나르는 데에도 썼다. 수원화성을 쌓은 내력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장군 그림이 실려 있다. 실학자 유중림은 ‘증보산림경제’에 장군을 장분(長盆)으로 적었다. 열 개가 넘는 장군을 보면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노래한 시인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윤원규기자
‘근현대생활관’인 제4전시 실에서는 70년대 전후 사용됐던 카메라, 영사기 등 영상문화 전시물과 타자기, 재봉틀 등 생활용품을 살펴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2전시실은 사방이 온통 탈이다. 꼭두각시놀이에 사용하는 꼭두각시, 박첨지, 홍동지 탈을 비롯해 전 세계의 탈이 노려보고 있다. 온갖 표정의 탈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오래 머물 수 없다. 안내하는 발길이 벌써 멀어진 탓이다. 뒤따라 도착한 제3전시실은 아기자기하다. 거울과 화장대 같은 규방용구, 저울과 됫박 같은 계량용구, 대패와 먹통 같은 목공용구, 가마니틀 같은 직조용구, 호롱과 등잔 같은 조명용구, 짚신을 비롯한 각종 신발 등의 의식주 관련 유물들이 전시관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짚신을 삼을 때 크기를 조절했던 ‘신골’은 정말 보기 드문 유물이다. 삼베를 짜던 베틀과 목화에서 무명실을 뽑던 물레도 여러 종류가 전시되어 있다.

제4전시실에는 설립자와 직접 관련된 1970년대 전후의 영화대본과 영사기가 전시되어 있다.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던 설립자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다. 한글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공병호타자기’도 있다. 안과의사 공병호 박사가 1949년에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한글을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세벌식 타자기다. LP판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자리에서 김 관장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LP판으로 지금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국문학을 전공한 김 관장은 서울 한복판에서 25년 동안 ‘이화음악사’를 운영했던 음악애호가이며 개인전을 열 정도로 여행사진작가로도 활동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스크림 장수가 들고 다니던 낡은 사각의 나무 상자에 담긴 사연도 재미있다. 흥미롭고 특별한 유물들을 자세히 살피려면 한나절로도 부족할 정도로 유물이 많다.

5전시실에서는 농기구와 축산용구들이다. 낫, 호미, 지게, 홀태 등 농사에 쓰였던 다양한 기구들로 채워진 공간에 들어서면 1970년대의 농촌으로 이끈다. 멍에를 멘 누렁소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서 있다. 박제된 소를 통유리 속에 전시하지 못해서 보존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다시 소를 박제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들여야 할까. 비용문제로 귀중한 전시물이 부식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윤원규기자
제5전시실은 ‘농경생활관’으로 과거의 생업활동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파종, 경작, 수확 등에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가 전시돼 있다. 윤원규기자

■ 방앗간부터 대장간까지

박물관 야외도 전시실이다. 방앗간, 헛간, 대장간, 너와집, 상여집이 있다. 무려 일곱 개의 장독대가 있고, 솟대와 장승 옆에는 두레박 대신 지하수를 끌어올리던 펌프가 설치되어 있다. 민간신앙을 알려주는 너와집과 망자를 무덤으로 태우고 가던 상여를 보관한 상여집도 무척 인상적이다. 박물관 곳곳에서 한국의 민속과 전통문화의 모든 것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설립자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러나 전시 공간을 넓히면 더욱 빛날 유물들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보관시설이 낡아 어렵사리 수집한 귀중한 유물들이 손상되고 있다는 관계자의 말에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럼에도 두루뫼박물관이 그동안 걸어온 행적을 살펴보면 놀랍다. 국내 사립박물관 1세대로 출발한 두루뫼박물관은 경기도박물관협회 경기도박물관인상 대상(2013)은 물론 박물관인의 최고 명예인 한국박물관협회 자랑스런 박물관인상(2014)과 문화체육부장관 표창(2018)까지 수상했다. 2014년에는 경기도박물관협회가 주관한 제10회 경기도박물관인상 큐레이터상을 수상할 정도로 기획력도 탄탄하다. 우리 곁에서 사라져간 타자기, 녹음기, 전축 같은 물건들을 전시한 ‘안녕, 아날로그 시대여’(2010)를 비롯해 글자가 적힌 책·옷·비석을 모은 ‘글자들의 세상’(2011), 담거나 나르는데 사용했던 용구들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담거나 나르거나’(2013), 나무로 만든 각종 생활용품을 통해 나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기획한 ‘나무는 우리에게’(2014) 같은 흥미로운 기획전을 꾸준하게 열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2020년 특별기획전의 주제는 ‘유물 속에 사는 동물’이다.

윤원규기자
우리나라의 전통연희인 꼭두각시 놀음과 탈놀이에 사용되는 다양한 ‘탈’을 만날 수 있는 제2전시실. 박첨지, 홍동지 등 우리나라의 전통 탈과 전세계의 다양한 탈이 전시돼 있다. 윤원규기자

■ 정부지자체, 사립박물관 지원 나서야

코로나19로 사립박물관의 시름이 더욱 깊다. 사재를 털어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교육하는 사립박물관은 국가나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를 가르치는 일을 개인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립박물관 지원에 나서야할 때다.

두루뫼박물관은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고향으로 안내하는 완행열차 같은 곳이다. 설립자 강위수 선생이 병상에 계신다는 소식은 뜻밖이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골 초가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선생의 건강을 빌며 그가 평소 즐겨 부르셨다는 ‘고향의 노래’를 불러본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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