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설을 앞둔 단상
[지지대] 설을 앞둔 단상
  •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 입력   2021. 02. 09   오후 8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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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조심하라는 뜻으로 신일(愼日)이라고도 불렸다. 통일신라시대였으니 1천500여년 전이다. 그것도 삼남(三南)지방에서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요즘도 이렇게 부르는 마을이 더러 있다. 역시 남녘에서다. 해가 바뀌니 매사(每事)에 삼가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도 쓰였다.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다. 설을 한번 쇠면 1년이듯, 나이도 한 살씩 더 먹는다. 흔히 ‘몇 살?’하고 물을 때 바로 그 ‘살’의 어원이다.

▶새해 아침은 으레 낯설기 마련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경험해보지 못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설다’나 ‘낯설다’ 등의 형용사들도 낯선 ‘설’에서 유래했다.

▶그 낯선 날이지만 가족들은 반갑기만 했었다. 피붙이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기 때문이다. 몇 달 못 봤던 조카들이 그렇고, 어느새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한 당숙도 그랬었다.

▶떡국을 뜨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다 보면 화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었다.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늘었는지도 궁금했었다. 누구네 아들이 장가를 갔느니, 어떤 집 손녀가 아들을 낳았는지도 반가웠었다. 세상이 참 험하더라면서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었다. 그렇고 그런 얘기지만 하루가 짧았었다.

▶코로나19 이전 설 분위기는 그랬었다.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단조롭지만, 그간 살아온 사연들은 애틋하고도 정겨웠었다. 그래서 허접스럽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았었다. 꼭 내 일처럼 느껴졌었다. 얼굴을 맞대고 턱을 괴고 들으면 그랬었다는 말이다.

▶이번 설은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에 4·7 재·보궐선거 탓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빅 쓰리 가운데 두 곳인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다. 여야가 불을 지핀 건 오래됐다. 설 밥상 민심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만나기 무섭게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화제는 선거로 이어질 터이다.

▶여야 입장도 사뭇 다르다. 여당은 코로나19 극복과 일상회복 희망을 부각한다. 야당은 식상하지만 또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온다. 설을 설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다. 정치의 영역일 뿐이라고 애써 합리화하지 말자. 이번 설을 설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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