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의 더클래식] 슈만의 음악평론가, 음악잡지 발행인으로서의 길
[정승용의 더클래식] 슈만의 음악평론가, 음악잡지 발행인으로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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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은 독일의 추비카우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점의 많은 책은 슈만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책과 벗하며 문학적 소양도 쌓여 갔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슈만은 어머니의 바람으로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결국 음악가의 길로 진로를 바꾸되 된다. 그의 또 다른 재능인 글재주는 음악가로서의 길을 걸으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는 작곡가를 겸한 음악평론가로 활동했다.

슈만은 뛰어난 글 솜씨와 날카로운 평으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가 음악평론 일을 하며 이룬 업적은 단지 이런 펜대를 통한 명성이 아니었다. 그는 음악적 선견지명이 뛰어났고, 그런 자신의 눈을 통해 음악계의 숨은 보석들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쇼팽의 천재성, 브람스의 음악적 탁월함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슈만이었다.

1834년에는 직접 <음악신보>를 발행하여 더 많은 훌륭한 음악가를 소개했다. 이와 함께 당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선배 음악가인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을 올바로 평가하며 그들의 진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다.

사랑으로 충만한 아내 클라라, 그리고 알토란같은 자식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았을 것 같은 슈만. 하지만 슈만은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앞서 클라라의 아버지가 결혼을 결사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던 슈만의 정신병 때문이었다. 슈만의 병은 점점 심해져 갔고, 그는 급기야 집 앞 라인 강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어부의 도움으로 살아났지만, 그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2년여를 지내다가 1856년 46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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