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의 숙원(宿願), ‘팔달문 성곽 잇기 사업’이 사실상 졸속 추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인들을 몰아내면서 이주대책은 물론 명확한 향후 구상조차 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수원화성 문화재구역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팔달문 성곽 잇기 사업을 추진, 보상 작업에 착수했다고 20일 밝혔다.
투입되는 예산은 국ㆍ도비 포함 2천500억원으로, 보상비만 1천750억원(70%)을 차지한다. 오는 2030년까지 팔달문 양측의 끊어진 성곽 300여m 구간을 복원하기 위한 첫 단추는 그 자리에 삶의 터전을 꾸린 상인들을 이주시키는 것이다.
팔달문시장 상인들은 ‘정조가 만든 시장을 지켜달라’며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팔달문시장은 정조대왕이 전라도 해남에서 무역업을 하던 고산 윤선도의 후손들을 수원으로 불러들인 뒤 상권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시는 팔달문시장 전체를 없애려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버스정류장 3개소와 함께 시민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주요 구역(3천245㎡)이 철거 대상이다. 수원화성을 복원하겠다는 명분으로 수원화성과 역사를 같이하는 장소를 밀어버리는 셈이다.
상인들은 과거ㆍ현재를 공존시킬 대안이라도 찾아달라고 외치지만, 시는 별도 이주대책 없이 감정평가에 따른 보상비만 내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시와 상인들이 진행 중인 소송은 20여건으로 파악됐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시가 토지를 매입해도 상인들이 행정ㆍ명도 소송을 건다”며 “이렇게 되면 소송이 진행되는 기간(통상 1년) 동안 임대료를 내지 않고 보전하니 사실상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시는 1911년 당시 지적도를 통해 성곽의 위치만 파악했을 뿐 고증작업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보상작업을 마치고 철거까지 완료한 뒤에야 발굴조사를 통해 고증작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구상은 없다.
특히 화성사업소 내 부서들은 팔달문 성곽 잇기 사업에 대한 업무 분장조차 정리되지 않았다. 문화유산관리과ㆍ문화유산시설과 등 2개 과(6개 팀) 담당자들은 향후 계획에 대해 ‘팔달문 성곽을 복원하느냐’고 되묻거나 ‘모르겠다’, ‘다른 부서의 업무 같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1월에 인사 발령을 받아 업무 파악이 미숙하다는 게 이유였는데 이미 2개월 이상 흘렀다.
수원시의회 한원찬 의원(국민의힘, 지ㆍ우만ㆍ행궁ㆍ인계동)은 “시의 계획에는 제재만 많고 지원이 없다”며 “단순히 보상비만 내주고 떠나라 할 게 아니라 이들의 생계를 어떻게 지켜줄 것인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문화재 복원은 문화재청의 심의와 지시 하에 추진되는 국책사업으로, 보상과 철거는 감정평가에 따라 법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며 “업무 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곧바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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