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예우해야 할 애국지사·후손… 여전히 ‘찬밥 신세’
영원히 예우해야 할 애국지사·후손… 여전히 ‘찬밥 신세’
  •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 입력   2021. 04. 11   오후 9 : 05
  •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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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예우해야 할 애국지사·후손… 여전히 ‘찬밥 신세’
제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11일 오전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이 안 의사의 잘려진 손가락 모형을 관람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수원시 장안구 보훈원 복지타운 임대아파트 7개동에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 340가구가 살고 있다. 독립운동가는 20가구로 생존 애국지사는 1명뿐이다. 나머지 가구는 모두 애국지사의 배우자나 자녀로 꾸려져 있는데 상당수가 노환 탓에 외출이 불가능하다. 그 아래 손자녀들 역시 어느덧 할아버지ㆍ할머니뻘 나이가 된지라 거동에 불편을 겪긴 마찬가지다.

안중근 의사의 외손 A 어르신(94)도 과거 수십년간 이 아파트에 살았다. 하지만 건강상 이유로 2017년 6월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이제는 보훈원 양로시설에 머물고 있다. 그 역시 노환으로 외출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훈원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손을 보태며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보훈원과 골목 안 사람들, 정부까지 안 의사의 뜻을 기억하려 김씨 어르신에게 각종 보훈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후손부터는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한다. 현행법상 독립운동가의 ‘손자녀’까지만 보훈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김씨가 외조부 덕(德)을 입는 마지막 지원 대상이다.

그렇게 김씨의 외할아버지를 향한 국가적 예우는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 단지회 선봉장이던 독립운동가, 전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고 1910년 3월26일 순국한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와 그 유족에 대한 정부 지원이 서거 111년 만에 사라져 가는 중이다.

■있으나 마나 한 지원책 숱하다…“보훈혜택 시작점, 너무 늦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기본적으로 보상금 및 연금을 지급하고 보훈병원과 위탁지정병원에서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학교 수업료ㆍ취업 보조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한다.

그러나 김씨 어르신처럼 수급자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보훈혜택 개시 시점도 한참 늦은 탓에 실질적인 혜택은 주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육지원의 경우 유공자 본인과 자녀, 손자녀의 중고교 입학금ㆍ수업료가 면제되고 대학 입시에서 특별전형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데 혜택을 받는 이는 거의 없다. 유공자 본인 평균 연령이 95세, 유족은 74세로 손자녀조차 학교에 다닐 연령이 한참 지나서다.

그 외에 지하철ㆍ버스 무임승차 또한 가능하다는 지원책이 있지만 굳이 유공자가 아니어도 만 65세가 넘으면 경로 우대를 받을 수 있어 딱히 도움은 안 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보훈혜택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의견을 꺼낸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가 보훈 정책을 개시한 1965년은 광복(1945년) 후 20년이 지난 때여서 지원 대상자를 명확히 헤아릴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가령 1895년 을미의병에 참가했던 독립운동가들은 당사자는 물론 손자녀까지 모두 사망한 뒤에야 보훈 혜택 대상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약 광복 직후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와 보훈이 곧바로 시작됐다면 손자녀까지 혜택을 줄 시간이 충분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국내 독립운동가 중 95%가 1990년대 이후에야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았다. 일제강점기 후반기 독립운동을 해 뒤늦게 독립운동가로서 인정을 받았더라도 ‘3대’로 못 박아 놓은 제한 기준 탓에 실제 후손들이 혜택을 받는 기간은 그만큼 짧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문해진 광복회 경기도지부 안산시지회장은 “더 많은 독립운동가와 후손이 숨어있을 텐데 국내 보훈 정책 자체가 늦게 시작돼 제대로 추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단지회 후손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건국공신 보답’ 혜택받는 경기도 독립운동가ㆍ유족 2천명 뿐

이 같은 이유로 현 시점에서 경기도내 전체 보훈 대상(19만2천여명) 중 보훈 혜택을 받는 독립운동가와 유족은 2천60여명(1.06%) 남게 됐다. 이 중 생존 애국지사는 7명뿐이다.

특히 문제는 보훈 수급자 수가 해마다 줄고 있어 앞으로는 ‘2천명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1965년 당초 광복 전 사망한 유공자의 경우 증손자녀까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했으나 1973년 돌연 유공자 수권 대상을 1세대씩 축소했다. 6ㆍ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 원호대상자와 형평성을 맞춘다는 까닭이었다.

즉 독립운동가 본인은 물론 자녀세대까지 사망한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수급 대상자마저 축소되고 있어 수권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원을 받아야 하는 후손 대부분이 손자녀, 증손자녀인 점을 고려하면 정부 정책은 현 시대와 동떨어진 조치다.

전문가들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차별화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영옥 광복회 경기도지부 사무국장은 “광복 76주년이 됐는데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많고, 그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져 있다”며 “실질적인 혜택을 위해 수혜자의 범주를 넓혀 그 다음 세대들에게 교육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연우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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