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실재 세계는 이중적이고 중첩적이다
[삶과 종교] 실재 세계는 이중적이고 중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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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가 끝났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이 교차하며, 우리 사회가 균열되고 있다. 양측 모두에게 지혜가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나는 보이는 현상 너머 실재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토끼와 오리> 그림을 아는가? 이 그림은 두 가지 동물이 겹쳐 보인다. 어떻게 보면 긴 귀를 가진 토끼고, 다르게 보면 길쭉한 부리를 가진 오리다. 같은 그림인데도 토끼를 볼 땐 오리가 보이지 않고, 오리를 볼 땐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 보는 것은 같지만 보이는 것은 때에 따라 다르다.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인식적 결과를 얻는 것이다. 왜 그러할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그림에서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다. 토끼를 보려고 하면 토끼가 보이고, 오리를 보려고 하면 오리가 보인다. 다른 하나는 어떤 인식체계를 가지고 보느냐에 달렸다. 우리는 주어진 감각자료들을 종합·정리하고 해석하는 두뇌신경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 두뇌신경망이 어느 것에 대한 인식체계를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즉 보는 이의 두뇌신경망이 토끼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은 토끼를, 오리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은 오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토끼와 오리>와 마찬가지의 현상을 일으키는 그림이 <루빈의 꽃병> 그리고 네덜란드 화가 에셔(M.C. Escher)의 <천국과 지옥> 그림이다. <천국과 지옥>에서 흰색의 형태에 주목하는 사람은 천사를 보게 되고, 검은색 형태에 주목하는 사람은 악마를 보게 된다. <루빈의 꽃병> 에서 가운데의 검은 물체를 보는 사람은 하나의 꽃병을 보게 되고, 양옆의 흰 물체를 보는 사람은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옆얼굴을 보게 된다. 단순히 재미있는 그림이라고 넘기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우리가 그 그림들을 서로 다른 사물로 인식하기 전, 그림의 실재는 무엇인가? 토끼도 오리도 아닌, 꽃병도 사람도 아닌,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우리 의식에 규정되기 이전의 그 실재 대상,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비친 세계 너머, 일상적 상식의 틀 너머, 개념적 규정 너머, 주객분별의 의식 이전, 일체 분별 이전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 세계는 무엇인가?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I. Kant)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의 인식형식에 의해 규정된 현상이다. 그리고 특정 현상으로 규정되기 이전에 물 자체(Ding an sich)가 있고,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칸트가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의식하기 전 위 그림들의 실재는 토끼도 오리도 아니고, 천사도 악마도 아니고, 사람도 꽃병도 아니다. 토끼이자 오리이며, 천사이자 악마이며, 사람이자 꽃병이기도 하다. 의식 이전의 실재 세계는 평범한 사유논리를 넘어선다. 모순율도 배중률도 통하지 않는다. 의식 이전 실재 세계는 이중성과 중첩성의 세계다.

시장 선거로 당선된 이나 탈락한 이나, 승패가 갈렸다고만 생각하며 일희일비하지 말고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통찰하고, 자숙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시민을 위해 각자 할 일을 하기 바란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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