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남양주시립박물관
[2021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남양주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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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정약용·서유구의 정신, 아이들에 산교육의 장...개혁과 실학·진경산수화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곳
윤원규기자
상설전시실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다산 정약용의 일생을 표현한 샌드아트와 남양주 옛 지도. 윤원규기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와부읍 팔당로 121번지에 남양주시립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경의중앙선 팔당역 바로 옆이다. 예봉산을 등진 박물관은 강 너머 검단산을 마주하고 있다. 두 산 사이로 한강이 흐른다. 박물관 1층 상설전시실 바닥에 고지도가 펼쳐져 있다. 지도의 중앙에 ‘두미’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맞습니다. 다산 선생이 한양으로 가는 배 안에서 서학에 대해 처음 들었다고 한 곳이지요. 여기가 바로 우리 박물관이 있는 곳입니다.” 김형섭 학예연구사는 지도에서 박물관의 위치를 짚어준다. 남양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남양주에 건설한 신도시 이름도 ‘다산’이 아닌가! 정약용 자신은 ‘열수(洌水)’라는 호를 즐겨 썼는데, 열수는 정약용의 고향 능내리(두릉) 앞을 흐르는 한강을 가리킨다. 정약용과 쌍벽을 이루는 실학자 풍석 서유구(1764~1845)도 능내리에서 ‘임원경제지’를 저술했다. ‘동국세시기’를 지은 홍석모는 두 선배 학자를 이렇게 칭송했다. “다산이 꿈꾼 사업은 책상자에 남았는데/ 풍석의 빼어난 문장은 경제 연구로 깊어 가네./오늘날 두릉 강변은 명사들의 세상/문성(文星)이 모여 있다 다투어 말하네.”

윤원규기자
2 010년 남양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해 남양주시 와부읍에 개관한 남양주시립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남양주시, 학문의 전통을 잇다

실학의 고장 남양주의 학문적 전통은 그 뿌리 깊다. 박물관에는 진경산수화를 창시한 겸제 정선이 1741년에 그린 ‘경교명승첩’ 4폭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 장이 석실서원을 그린 것이다. 병자호란 때 ‘가노라 삼각산아’라는 시조로 유명한 척화파의 우두머리 청음 김상헌을 배향한 석실서원은 진경문화의 산실이자 북학파를 이끌었던 담헌 홍대용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500년 역사의 최고 개혁으로 꼽히는 대동법을 확산시킨 잠곡 김육도 이곳 출신이다. 이처럼 남양주시는 개혁과 실학, 진경산수화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곳이다. 한국 최고의 한학자를 배출한 ‘지곡서당’이 남양주에 있었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자 헌신한 인물들을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박물관을 찾아 홍대용, 정약용, 서유구의 정신을 배우면 좋겠다. 남양주시립박물관은 “남양주시가 학문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남양주시의 시정목표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사 오는 도시”를 건설할 것이다. 좋은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성인들에게도 평생교육사업 등 인생2모작 프로그램을 맞춤으로 제공한다는 시정 방침은 남양주의 교육 전통과 잘 어울리는 정책이다.

윤원규기자
상설전시실에서는 남양주에서 출토 된 구석기유물부터 조선, 근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왕실문화와 서민문화가 어우러지다

1층은 역사문화실이 있고, 금석문실이 있는 2층은 현재 새롭게 단장 중이다. 남양주의 역사와 생활상을 재구성한 역사문화실은 상설전시실이다. 주제를 ‘남양주의 길을 묻다’, ‘남양주에 들어서서’, ‘남양주 역사 한눈에 보기’, ‘선사시대 이야기’, ‘왕실과 학문의 고장’, ‘생활이야기’로 구성하여 남양주를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남양주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까만 돌조각이 눈길을 주자 안내하던 김 학예연구사가 손가락보다 작은 돌조각 속에 담긴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들려준다. “용암이 굳어진 흑요석 좀돌날입니다. 주변에 화산이 없는데 저런 흑요석이 이곳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한반도에 정착한 인류는 석기시대에 이미 백두산을 비롯한 먼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것이지요.” 조안면 능내리를 비롯해 남양주시 전역에서 발굴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의 다양한 유물이 시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남양주에도 조선시대의 역사가 가장 풍성하다. 네모난 백자에 청색 글씨가 가득 새겨진 지석 한 개가 있다. 우암 송시열이 지은 김상헌의 지석이다. 설명문에 김상헌이 “억강부약(抑强扶弱: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사람은 도와주는 것)의 선비상을 확립했다는 설명문이 눈길을 끈다. 봉선사, 흥국사,봉영사 같은 왕실사찰이 있었던 남양주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릉도 여러 기가 있다. 특히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가 잠들어 있는 광릉(光陵)과 대한제국을 연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가 묻힌 홍릉(洪陵)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광릉과 홍릉의 모형을 비교해보니 그 차이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전시관 한 켠에 두 사람이 얼음을 깨고 그물로 고기를 잡고 있는 모형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두미협관어’란 시를 바탕으로 한강에서 고기잡이하는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남양주에는 곳곳에 다산의 숨결이 살아 있다. 남양주에 ‘퇴계원산대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산대놀이의 흥겨운 풍경이 연상되는 모형을 보며 왕실과 사대부에 가려진 남양주의 서민문화를 생각해 본다. “금류동천”이란 커다란 글씨가 한 벽을 채우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수락산 금류폭포 바위에 새겨진 암각문을 같은 크기로 재현한 것인데 남양주에 풍부한 금석문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대부들이 많이 살았고, 왕들의 무덤이 많은 까닭에 남양주시 곳곳에서 조선 최고의 글씨와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석물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은 조선의 선비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금석문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금석문 배우기’, ‘시간 여행’, ‘남양주의 금석문을 찾아서’, ‘금석문 체험하기’ 등이다.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을 위한 상설 프로그램으로 ‘우리 고장 지도 만들기’, ‘건식탁본체험’, ‘남양주 문양찍기’, ‘전통문양 모래그림 액자만들기’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남양주 역사문화 아카데미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남양주 역사학교’는 특히 호응이 좋다. 스스로 탐구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남양주역사를 알리고, 교육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학예연구사’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료한 학생 중 희망자에게 전시 해설, 박물관교육 진행 지원 등 ‘어린이 학예연구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는 특별한 선물이다.

윤원규기자
남양주시 퇴계원은 조선시대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올라오는 곡식,장작,채소 등 물류의 중심으로 상인들의 숙박 및 시장이 발달하며 가면놀이 문화도 꽃피우게 됐다. 퇴계원산대놀이를 하는 시장을 표현한 인형. 윤원규기자

남양주는 한강을 경계로 백제와 인접하고 있었기에 백제의 선진문화를 일찍 누렸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왕실과 양반사대부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남양주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상업이 발달한 교통의 요충으로 1908년에는 연합의병부대였던 ‘전국 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격을 계획했을 때 집결지였다.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아우 이회영, 이시영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길러낸 이석영(1855~1934) 선생은 남양주의 자랑이다. 남양주시립박물관은 남양주의 역사적 인물 발굴과 선양에 정성을 쏟고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남양주를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이 교육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야외 마당에는 남양주의 다양한 석조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남양주시립박물관이 2017년도에 이어 2019년에도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제’ 우수인증기관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은 박물관의 기획력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윤원규기자
남양주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가인 다산 정약용의 생가 및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남양주시립박물관에서는 정약용의 일생을 엿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이처럼 남양주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잘 정리하고 시민들에게 제공하려면 정책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40년 남짓한 남양주시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빠른 성장과 변동으로 지역의 소중한 유산들이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처럼 늦은 것이 때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시가 나서서 지역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유물을 적극 구입하고 시민들로부터 기증을 권장하는 사업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김형섭 학예연구사는 전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꼭 과거의 유물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도 훗날에는 소중한 역사가 될 것이니까요. 시민들과 역사를 만들어 가는 박물관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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