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난민 취업실태] 6. 한국에서 겪은 부당한 일들

‘코리안 드림’ 뒤에 도사린 ‘코리안 악몽’
난민 ‘주홍글씨’ 인종차별·임금체불 ‘냉가슴’, 일자리 ‘좁은문’… 막상 취업해도 차별 높은 벽
성범죄 당해도 참고 일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 최근들어 난민 수용 찬성 확대 ‘인식의 변화’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이 그려져 있는 대형벽화.

대한민국은 오랜 시간 ‘난민’이라는 단어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 사이 난민들에겐 ‘불쌍한 존재’,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깊게 자리했다. 그러다 지난 2018년 제주에 예맨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본격적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동정심을, 누군가는 혐오감을 느꼈다. 드디어 난민을 인식하고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곳곳에서는 난민을 향한 차별이 존재한다. 특히 생업에 뛰어든 난민이 취업 과정에서 겪는 차별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폭언을 듣거나 과도한 업무가 주어지기도 하고, 임금체불도 발생한다. 심지어 폭행을 당하거나 성범죄 피해를 겪는 일도 적지 않다. 한국인들의 난민 차별 배경에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이 자리하고 있다. 또 난민의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대한민국에 돈 벌러 온 외국인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차별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본인의 의지와 달리 어쩔 수 없이 난민이 돼 낯선 땅에 온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미 수많은 난민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서서히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이제라도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과연 그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있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동시에 차별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도 찾아보려 한다.

 

국내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근무기간 만료로 귀국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쉴 새 없이 일해도 쥐꼬리 월급

난민이라는 신분으로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바로 취업이다. 대부분 가족과 함께 들어온 까닭에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난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청자와 인도적 체류자가 불안한 신분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설사 구했다 하더라도 각종 차별에 시달리거나 임금체불 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차별금지법간담회 당시 자료집을 보면 난민들이 구직 과정부터 차별을 당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인 난민 신청자는 “인종차별을 받았고, 다른 외국인들과 비교해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슬람 출신 난민 인정자는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답답해했다. 또 고용비자를 가진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며 하나 둘 떠나갈 때도 난민 신청자는 아무 일도 얻지 못하고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인도적 체류자 신분이라는 이유 하나로 취업을 거절당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인 상사에게 매일같이 심한 욕설을 듣던 또 다른 난민은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참고 다녀야만 했다.

비행기 출발 시각에 맞춰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탑승 수속을 밟고 있다.

임금체불도 난민들이 자주 겪는 부당한 일 중 하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난민은 “한국어를 공부하기 전에는 문제점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누가 농담을 해도 욕하는 건 아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직원들과 관계도 안 좋아져 결국 퇴사했다”면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임금체불을 자주 겪어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난민이라서, 혹은 그저 외국인이라서 일상에서 차별을 겪는 일도 다반사다. 김포에 사는 미얀마 출신 난민은 트럭에 짐을 싣고 왔다가 사무실 문을 막고 주차돼 있는 차를 발견했다. 연락처를 보고 차를 빼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눌한 한국어 때문인지 아무 조치가 없었다. 급기야 상대방은 적반하장 격으로 나와 경찰까지 부르는 상황에 처했으나 다행히 상황은 잘 마무리됐다. 이 난민은 “끝내 사과를 받아낼 수는 있었지만 가슴 속 깊이 새겨진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는 “난민들도 취업 시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똑같이 겪는다고 보면 된다. 한국인 사업주들에게는 난민도 그저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라며 “차별이나 임금체불은 물론, 폭행이나 성범죄 등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어려움을 겪는 난민들이 많다. 직장을 맘대로 옮기지 못해 그저 참고 일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3월 경기도 화성의 한 선별진료소 앞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 달라진 난민에 대한 인식

난민에 대한 인식은 3년 전 제주 예맨 난민 사태 당시와 비교하면 대체로 긍정적으로 변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1월 ‘대한민국 난민 인식 변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한민국 성인남녀 10명 중 5명은 난민수용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2018년 이후 난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사에 응한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천16명 중 난민 수용 찬성은 33%(335명), 반대는 53%(538명)였다. 2018년에는 찬성 24%, 반대 56%였다. 약 3년 사이 난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찬성은 소폭 증가하고, 반대는 소폭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

난민수용을 찬성하는 이들은 △난민 인권에 대한 존중(74%) △난민협약 가입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책임(56%)을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반대는 △난민수용을 위한 정부와 국민의 부담(64%) △범죄 등 사회문제 야기(57%) 등을 이유로 든다. 여기에는 “난민에 대한 오해와 가짜뉴스의 영향이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유엔난민기구는 분석했다.

설문조사 결과는 대한민국이 난민에 대한 인식을 점차 긍정적으로 바꿔가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변화가 미미하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현실에서는 난민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그들을 오해하며 부정적 인식을 바꾸지 않으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경기도에서 농장을 운영 중인 한 사업주는 “한국인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해서 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그동안 난민은 한 번도 고용해 본 적이 없다”며 “농장이라고 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인식해 지원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이 일을 해도 오래 함께 할 수 없어 난민을 잘 고용하지 않는다. 난민들은 덜 힘들고 돈도 많이 주는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경기도 화성의 한 기업체에서 마련해 준 열악한 환경의 컨테이너 기숙사 내부 모습.

■ 차별금지법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9명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약 70%가 코로나19로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된 사회집단이 있었다’고 답했고, 그 대상이 외국인과 이주민이라고 생각한 응답자는 14.4%에 달했다. 여기에는 난민도 포함돼 있다.

최근 사회 각계에서는 종교·고용형태·성별·성소수자 등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한창이다. 2006년 노무현 정권 시절 인권위가 처음으로 제정 권고한 차별금지법은 끝내 국회에서 파기됐고,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정부 차원의 추진을 중단시켰다. 이후에도 차별금지법이 꾸준히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지난해 장혜영 의원이 △성별·장애·나이·혼인 여부·종교·사상·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직간접 차별을 당하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시정 권고를 받은 자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현재 해당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정의는 물론 피해자 구제 방안까지 담은 실질적인 법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에서 ‘차별받지 않는다’, ‘국가는 차별을 예방한다’ 등의 내용이 있지만 강제할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보다 ‘강제적’이라는 점에서 국회 통과 시 난민을 향한 차별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국 이주인권 단체는 성명에서 “코로나19 재난의 위기에서 바이러스 전파에 예외는 없었으나 재난지원정책 등에 있어서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주민과 난민은 배제됐다”며 “차별금지법은 모두의 안녕을 지킬 법이다. 생활영역 전반에서 모든 이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과 혐오에 사회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영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