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法석] 달빛 비친 검찰 인사, 정권수사팀 전원 물갈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단행하며 정권 수사팀 전원을 물갈이했다.

법무부는 25일 고검검사급 검사 652명, 일반검사 10명 등 662명에 대한 신규 보임 및 전보 인사를 내달 2일자로 제청했다. 이른바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는 검사들은 후방으로 밀려난 반면, 친(親) 정부 성향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은 주요 보직으로 대거 발탁됐다. 법무부는 형사ㆍ공판부 검사를 우대하는 등 기존 인사 기조를 유지했다고 설명했지만, 주요 권력사건을 수사하던 팀장들이 모두 교체되며 정권 수사를 무마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권 겨냥했던 수사팀, 전원 물갈이

정권 관련 수사팀장이 모두 교체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이끌었던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은 필수 보직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옮겨졌다. 이정섭 수사팀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사건을 주도했다고 판단, 대검에 기소의견을 낸 상태다. 이 사건을 후임 형사3부장에게 맡길지, 직제개편에 따라 직접수사를 할 수 있는 형사6부에 넘길지는 신성식 수원지검장에게 달려 있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았던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좌천됐고,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던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 역시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전보됐다.

이 밖에도 이스타항공 횡령ㆍ배임 사건과 관련해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을 구속 수사하던 임일수 전주지검 형사3부장은 서울북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현 부장검사를 제외하면 모두 필수 보직기간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친(親) 정부 성향 검사, 요직 발탁

정권을 겨냥했던 검사들이 ‘좌천성 인사’로 자리를 옮긴 반면, 친정부 성향으로 평가되는 검찰 간부들은 주요 보직을 꿰찬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에서 박범계 장관을 보좌했던 측근들이 요직으로 발탁됐다. 박철우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지난해 윤 전 총장의 징계위 실무를 처리했던 김태훈 검찰과장은 서울중앙지검 4차장으로 중용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아내 관련 사건을 수사했던 정용환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도 반부패강력수사1부장으로 이동했다.

이와 함께 ‘피고인’ 신분의 검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대전지검 검사는 부부장검사로 승진, 공정거래위 파견을 유지했다. 이 검사는 ‘윤중천 면담보고서 왜곡 및 유출’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한동훈 검사장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에서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한 데 이어 이번에는 울산지검 차장검사로 영전했다. 정 차장검사 역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 신분이다.

지난해 12월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타당성을 검토하는 감찰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의견진술을 마친 뒤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타당성을 검토하는 감찰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의견진술을 마친 뒤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女검사 돌풍…尹 겨눴던 박은정, 성남지청장 영전

현 정권에서 이뤄지는 사실상 ‘마지막 검찰 인사’에서 여성 검사들의 약진도 돋보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징계를 주도했던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성남지청장으로 영전했다. 박은정 담당관은 윤 전 총장 징계 국면에서 직속상관인 류혁 법무부 감찰관을 패싱하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직보하면서까지 징계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앉게 될 성남지청장직은 차기 검사장 승진을 앞둔 중간간부 선두 주자들이 근무하는 ‘수도권 핵심 요직’으로, 박 담당관이 차기 인사에서 승진하게 되면 남편 이종근 서울서부지검장과 함께 사상 첫 ‘부부 검사장’이 나올 수도 있다.

박 담당관의 자리는 ‘윤석열 라인’과 대척점에 섰던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이어받았다. 임은정 연구관은 지난해 9월 추 전 장관이 대검 발령을 낸 뒤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을 감찰했다. 당시 고검장ㆍ대검 부장 회의에서 해당 검사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지난 3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에게 역사가 책임을 물을 것이고, 저 역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강선주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는 여주지청 형사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 부부장은 지난 2018년 하반기 대검 모범검사에 선정된 바 있다. 그는 지난 2006년 임용 이후 여성 검사로서는 드물게 강력분야를 자원, 6년간 강력사건을 전담해오기도 했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입’이 될 대변인 자리에도 모두 여성이 배치됐다. 법무부 대변인에는 박현주 서울동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 대검찰청 대변인에는 서인선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장이 발탁됐다. 이 밖에도 국내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은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팀장으로 보임됐다.

■“권력 충성하면 영전, 국민 충성하면 좌천”

현 정권의 색이 짙게 밴 검찰 인사 결과에 대해 제1야당 국민의힘은 이날 ‘권력에 충성하면 영전, 국민에 충성하면 좌천’이라는 일갈을 내놨다.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권력 비리를 수사했던 검사들은 교체되거나 좌천됐고, 정권에 충성한 검사들은 영전했다며, 검찰개혁의 목표는 권력수사 무력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내부 분위기도 어둡다. 검찰 관계자는 “예상했던 대로 정권을 수사하던 수사팀이 해체됐다”며 “원칙에 따라 수사를 해 온 검사들을 먼 곳으로 보내는 걸 보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전면 인사를 통해 인적 쇄신을 이루고 조직에 활력을 부여하고자 했다”며 “인권보호부 신설 등 검찰 직제개편 사항을 반영한 인사로, 우수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정민훈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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