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이해우 인천항운노동조합 위원장
[프리즘] 이해우 인천항운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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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1·8부두 폐쇄 안타까운 현실”
인천항 개항 이래 130년 동안 ‘항만 종사자’들 대변 자부심

“전 세계 항만에선 지금 물류전쟁이 벌어지고 인천항도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할텐데 폐쇄라니…”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인천항 1, 8부두 재개발 논란은 지난 5월 28일 해양수산부 장관의 로드맵 발표로 일단락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인천항 8부두를 오는 2015년 5월말로 폐쇄하고 이후 단계적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만관련 업·단체는 물론 전문가들조차 폐쇄 시점을 정해놓고 항만을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생존권이 걸린 항만종사자와 업체에 대한 사전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인천항 개항 이래 130년간 하역 노동자들을 대변해온 인천항운노동조합 이해우(60) 위원장을 만나 8부두 개방과 관련된 조합의 입장을 들어봤다.

우선 해양부의 로드맵 발표 이후 인천항 업체와 항만종사자들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재개발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업계나 우리 때문에 개방이 늦어진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 회사 모두 개방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재개발에 앞서 선행돼야 할 문제들에 대해 정부가 확실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우선이란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개방 이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항만종사자나 하역사와 사전에 어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부터 했다. 그것도 구체적인 날짜까지 못 박았다.

그렇다면, 노동조합 입장에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크게 보면 네 가지다. 항만종사자에 대한 고용 보장책 수립, 업체의 영업권 대책 마련, 8부두의 친수공간 조성, 인근 상권 보호 방안 수립 등이다.

특히 이 중에서 고용과 영업권 보장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책이 현재까지 아무것도 없다. ‘근로자는 이 회사, 저 회사로 보내면 되고 회사는 저기로 가라.’ 이런 식이다.

우리 조합원은 지난 2007년 10월 정부 정책에 따라 ‘정년, 임금수준, 근로조건’을 보장한다는 ‘항만인력공급체제의 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이하 지원특별법)’에 따라 상용화로 전환된 사람들이다.

정부가 고용 보장을 약속했고 나 역시 위원장으로서 이분들이 무사히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7월18일 항만종사자와 업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TFT가 구성돼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여기서 안정적인 대책이 수립되길 바라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8부두 개방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지.
8부두는 인천항 내항 중에서도 수심이 가장 좋다. 따라서 대형 본선이 작업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8부두는 아직까지 부두로서 제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주민들의 민원여파로 일방적으로 부두가 폐쇄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시기다.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성공적인 개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8부두가 개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한마디로 친수공간이다. 원래 주민들의 요구 사항도 친수공간 조성이다. 그러나 이권이 개입하고 정부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일부 상업시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상업시설의 도입은 항만은 물론 지역 상권 모두가 붕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인천항은 전통적인 원자재 항이다. 그러다 보니 취급되는 화물 또한 크고 정형화돼 있지 않은 특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다소간의 소음과 분진은 필연적이다. 상업시설이 도입될 경우 끊임없는 민원이 제기될 것이다. 지역 상권도 마찬가지다. 지역상인은 다윗이 아니다.

골리앗을 상대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순간 지역 상권은 도미노로 붕괴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친수공간을 주장하는 이유다.

항운노조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개 좀 달라.
1898년에 결성된 성진부두노조로부터 출발한 게 벌써 130년이 지났다. 항운노조는 인천항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중간에 일제 강점기, 6.25사변을 거치면서 지금처럼 본격적인 조직을 갖춘 것은 1961년부터다. 당시에는 부두노조와 운수노조가 각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980년도에 두 노조가 항운노조로 통합됐다.

구체적으로 항운노조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외형적으로는 물류라 칭해지는 모든 곳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항만은 물론, 농수산, 철도 등 전 분야에 걸쳐 있다. 물론 가장 광대한 작업장은 항만이다. 물류가 국가의 심장이라면 항운노조는 동맥이라 할 수 있다.

항운노조는 정부나 업체에서 꺼려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 왔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정부를 상대로 인천항의 활성화를 막고 있는 규제 완화, 일부 대형 화주의 하역 요금 인하 반대, 부두 임대료 인하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내적으로는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항운노조는 인항고등학교와 신용협동조합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두에 기계화가 진행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작업은 인력에 의존했다.

특히 대형화물을 다루다 보니 작업 강도와 산재 위험률도 높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항만은 이직률도 높고 늘 기피대상이었다. 부두노동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항만에서 일하는 이유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부두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후대에는 배우지 못해 고생하는 설움을 물려주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조합원 자발적으로 수 십 년간 기금을 냈고 이는 1987년 인항고등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또 지난 2007년 항만하역분야가 상용화되면서 약 1천여 명의 조합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이전까지 우리 조합원들은 법률적으로 일용직 신분이었다. 물론 항만하역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학자금, 주택자금 등이 필요해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 많은 곤란을 겪어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조합원 스스로가 어렵게 모은 돈을 출자해 인천항 신협을 출범시켰다.  여기에 점차 지역 주민들도 참여해 현재는 430억 원의 자산이 형성됐다.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노동조합의 최대 행사 중 하나는 대의원대회다. 우리 조합은 이 행사를 치루면서 화환을 받지 않는다. 대신 쌀을 기증받는다. 이렇게 모인 쌀은 ‘사랑의 쌀’이란 이름으로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정, 저소득층 이웃에게 전량 전달한다. 또한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는 물론 범국가적인 재난에도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기탁했다.

끝으로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사안에 주력할 것인지.
내 원래 고향은 경북 포항이다. 그러나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인천에서 보냈다. 그리고 37년간 인천항에서 근무했다. 작게는 인천항이 또 넓게는 인천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몸소 봐왔다.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남은 임기 그냥 편하게 보내다가 퇴직하란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늘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과 복지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조합에서는 매년 모범조합원으로 선정된 분과 정년을 앞둔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외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권익향상을 위해 제주도와 강원도 등에서 워크숍 등을 개최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그 폭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8부두 개방을 위해 관련단체와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글 _ 김창수 기자 cskim@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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