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았다~ 이놈! 오동통 살 오른 ‘봄낙지’ 갯벌 속 감도는 물컹한 촉감
30일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을 몸소 체험해보기 위해 화성 제부도에서 갯벌 낙지잡이에 도전했다.
지난해 ‘김채취 작업’과 ‘바지락 캐기’에 도전한데 이어 세번째 어촌 현장 체험이다. 어촌 현장 체험에 도전할때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각오만큼은 남달랐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게 얻어지는 결과는 없었다. 낙지는 초심자에게 호락호락 자신을 허락할 만큼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고, ‘아들이 직접 잡은 낙지로 연포탕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하고 계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야무진 꿈’에 불과했다.
시행착오로 가득했던 3시간여의 갯벌 낙지잡이 체험을 소개한다.
■ 낙지야, 기다려라
갯벌 낙지잡이에 도전하기 위해 일대 어민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전 5시30분. 본사가 위치한 수원에서 화성 제부도까지 1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해 새벽 3시께에 눈을 뜨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아침잠이 많은 기자에게 있어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관문. 잠을 잤는지 못잤는지 하품만 연신 나오는게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허겁지겁 준비를 마친 뒤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줄 사진기자와 함께 새벽 차에 몸을 실었다.
어둠 속을 달린 지 1시간여가 지나자 제부도의 갯벌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 드리웠던 어둠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시간은 아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갯벌 넘어 붉게 떠오르는 해도 멋스럽고, 바다 내음 가득한 새벽 공기도 제법 쾌청하다.
제부도 앞 갯벌에 다다르자 긴 장화와 고무장갑, 앞치마 등으로 완전무장한 어민들이 경운기를 타고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일 낙지체험을 도와줄 노용학 제부리 어촌계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장화와 고무장갑으로 나름 준비태세를 마치고 낙지와의 격전을 벌이기 위해 갯벌로 향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 계속된 헛탕, 거칠어지는 숨소리
봄철 낙지는 산란기 직전의 낙지로 이른바 ‘세발낙지’로 불리는 가을 낙지에 비해 몸통이 큰 것이 특징이다. 바지락 등을 먹기 위해 보통 갯벌 아래 30㎝~50㎝ 아래에서 서식하는데 깊이 들어갈때는 1m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노용학 어촌계장으로부터 낙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으며 낙지잡이에 착수했다. 경운기에서 내린 노 계장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갯벌 곳곳에 나있는 구멍을 한번씩 후벼 파보기 시작했다.
낙지가 갯벌 아래로 파고들어간 구멍을 찾기 위한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노계장은 “쏙(갯가재의 일종) 구멍이 있고 낙지 구멍이 따로 있어요”라며 “쏙 구멍은 크기가 작고 수직으로 내려가지만 낙지구멍은 크기가 크고 옆으로 비스듬한 것이 특징이지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설명은 설명일뿐. 초심자의 눈에는 다 ‘그놈이 그놈’ 같았다. 일단 비교적 커보이는 구멍을 찾아 어민들이 하는 것처럼 갯벌을 마구 파헤쳐보기 시작했다.
찐득한 갯벌 흙을 30~50㎝가량 파헤쳐내려가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긴 장화를 신고 푹푹 빠져들어가는 갯벌 위를 걷는것도 쉽지 않은데 삽질까지 하려니 작업에 착수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한마리 잡아올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초심은 갯벌 파헤치기 허탕 몇번에 서서히 겸손해져가고 있었다.
■ 짜릿한 손맛~ 그래 이 맛이야!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지 상당시간이 흘렀는데도 좀처럼 개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갯벌 채취에 나선 어민들도 ‘아 오늘 낙지가 너무 없어’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부리에서 태어난 어촌 사나이이자 10여년 경력의 베테랑 노계장 역시 연이어 헛탕만 치고 있었다. 연이은 헛탕에 지쳐 독립 작업을 멈추고 노계장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기자의 마음속에도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작업에 착수한지 1시간 가량이 지났을때 매의 눈으로 갯벌 구멍을 이리저리 살피던 노계장이 갯벌 안으로 손을 깊이 넣어 큰 낙지 한마리를 끄집어냈다. 다리길이가 30㎝가량 달할 만큼 크기가 제법 튼실한 ‘월척’이다.
월척을 향한 부푼 꿈을 안고 노계장을 어설프레 흉내내가며 갯벌 파헤치기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무작정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낙지가 들어간 구멍을 찾아 들어가야한다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막상 해보면 계속 허탕이었다. 낙지 구멍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는 초심자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작업임이 분명했다.
한마리도 잡지 못한 채 부러운 눈으로 어민들을 바라만 보던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이날 작업에 나선 노계장의 누나 노은주(56ㆍ여)씨가 기자를 불러 세운 뒤 “여기 한번 파보세요”라고 말했다. 노계장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낙지가 파내려간 구멍을 따라 팔꿈치가 갯벌에 잠길때까지 손을 쑤욱 넣어봤다.
그러자 고무장갑을 낀 손끝으로 물컹함이 느껴졌다. 낙지였다. 밥상은 차려졌지만 잘 차려진 밥상을 떠먹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터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티는 낙지를 갯벌에서 잡아꺼내려니 ‘헉헉’하는 거친 숨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하지만 막상 잡아뺀 낙지를 수집통에 집어넣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그동안의 피로감을 잊게 해줄만큼 짜릿했다.
■ 치열했던 ‘낙지잡이’ 어민들의 노고에 무한 감사
3시간 여 동안 갯벌 곳곳을 누볐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잡은 낙지는 단 한마리도 없었다. 한사람 몫까지는 아니더라도 낙지잡이에 보탬이 되겠다는 결심은 그저 헛된 ‘바람’에 불과했다.
그저 주변 어민들이 발견해놓은 낙지를 파헤쳐 끄집어 내는 짜릿한 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이날 그물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해 ‘득템’한 꽃게 한마리를 포함, 큼지막한 낙지 8마리를 포획한 노계장은 “오늘은 워낙 낙지가 없었네요.
수십년씩 갯벌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베테랑 어민들도 평균 5~6마리 밖에 못잡았잖아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냈다.
노은주 씨도 “아까 갯벌 밑으로 낙지 만져보니까 어땠어. 느낌 좋았지”라며 “갯벌 밑으로 물컹한 낙지가 만져질때 낙지 먹을때보다 더 힘이 난다니깐. 그 느낌을 느껴본걸로 된거야”라고 말했다.
3시간 여에 걸친 작업 이후 채취한 낙지는 산낙지, 연포탕 등으로 고스란히 식탁에 올라왔다. 갯벌에서 작업을 마친 뒤 맛본 직접 잡아올린 낙지의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치열했던 세번째 어촌현장 체험을 마치고 제부도를 뒤로하며 낙지 한마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민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박민수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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