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내가 만들고 싶은 도자기

/유승렬(안성문화마을원장·도예가)

‘안성맞춤’은 안성시장의 발달과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시장의 발달은 당연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언제나 흥청거리게 마련이고, 시장거리는 온통 축제분위기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한 것이 안성 남사당인데, 그 남사당은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신명나는 놀이로(풍물-농악,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 놀음) 서민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던 남사당은 민속학자 주강현씨의 말이 아니래도, 오늘날 대중연예의 효시이며, 선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남사당은 서민과, 대중과 함께 울고 웃은 서민 예술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남사당이 아니라 남사당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 안성에서 예술가라 이름하여 도예를 하고있는 입장에서 떠오르는 감회일 것이다. 안성과 인접한 경기도 광주군의 관요에 가려 그 명성이 덜 하기는 하지만 안성에도 조선시대 일반 도자기 생산양상을 보여주는 여러 도요지가 남아있다. 안성시 일죽면 화곡리의 도요지도 그중에 하나인데 17·18세기 지방 철화백자 가마의 중요한 발굴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 화곡리의 도공들이 만들던, 만들려고 했던 도자기는 어떤 도자기일까? 300여년전 안성 화곡리에서 가마에 불을 지피던 도공들의 혼과 정신은 어떤 것일까? 도자기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여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은지도 어언 20년이 흘렀고 안성땅에 자리잡은지도 10년을 바라보는데 난 어떤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것이고 300년 후에도 있을 이땅의 도공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가을을 느낄 사이도 없이 찾아온 겨울을 작업장 한켠 연탄난로를 통해 느끼며 내가 만들고 싶은 도자기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사당이 떠오른건 아마도 남사당처럼 그렇게 서민과, 대중과 함께 하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산다는 것은 결국 한길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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