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보수, 진보 양당 체제說
/임양은 논설위원
신당이 사태난다. 자고나면 당이 생기는 지경이다. 정당 제조 기술자들이 많아서인지 그 어려운 창당을 뚝딱 해치우고, 그런가하면 어느새 사라진다. 현재 국내 정당 수를 정확히 알 사람은 아마 있을 것 같지 않다. 무려 19개다. 1963년 정당법이 제정된 이후 파악된 정당 수는 98개다. 엊그제 중앙선관위에 확인해 보니 이렇게 나왔다. 정당 숫자로 보아서는 가히 정당정치가 도통한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10년전, 30년전, 50년전이나 수준 이하이긴 매한가지다.
자고나면 당을 옮기는 것을 본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 되레 큰소리 친다. 도대체가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정당이 너무 많다.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는 과거 군사정권이 선호했다. 야당이 많을 수록이 집권 여당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또 야당을 할 망정 쇠꼬리보다는 닭대가리를 좋아한 소아병적 영웅주의 취향의 정치인이 그만큼 많았던 탓도 있다. 그래봐야 그 당이 그 당이다. 아마 자기 당의 정강정책을 제대로 알 사람도 별로 있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중심제니, 내각책임제니, 이원적집정부제니 하는 정체(政體)의 차별화는 근원적 정당간의 차별화가 될 수 없다. 이는 보수정당, 진보정당 어디서든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작금의 정치권 이합집산을 정치권 재편 또는 대선구도 개편으로 보도하는 것은 불만이다. 합종연횡일 뿐이다. 참다운 정치권 개편은 보수, 진보 양대 정당 체제로 가는 길이다. 이만이 정당의 근원적 차별화다. 보수정당을 탈당, 보수정당으로 입당하는 것은 정책적 판단일 수 없다. 오로지 입신 위주의 인치적 판단이다. 진보정당에서 진보정당으로 옮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인치적 편의가 크게 지배된 국내 정당은 이 점에서 정당이기 보다는 붕당(朋黨), 아니 붕당보다 못한 행태다.
절대 보수와 절대 진보의 개념이 용납되지 않은 추세에서 보수와 진보의 인식은 상대적이긴 하다. 자본주의는 재수정 단계에 있고 공산주의는 형해화한 가운데, 중국 공산당은 자본주의화 해가고 북측 김일성주의 또한 시장 접목을 실험하고 있다. 자본주의 바탕 속에 분출되는 우리의 사회복지 및 노동정책 등의 세찬 욕구는, 즉 상대적 보수 대 상대적 진보의 인식이다. 만약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부정하거나 나라를 평양정권에 진상하려는 체제 거부의 반역이 진보를 말한다면, 그것은 위장일뿐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서 말하는 진보 본연의 실체가 아니다.
정치는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 통찰하고 이끌어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전이다. 앞서가기는 커녕 노상 제자리에서 맴돌며 허우적 거리는 정치권의 병리현상은 그 고질적 원인이 다당제에 있다. 오사리 잡탕같은 여러 보수세력은 큰 곳 하나로 합당돼야 하고 역시 오사리 잡탕 같은 여러 진보세력도 큰 곳 하나로 합당돼야 한다. 특정지역, 특정집단을 기반삼아 정치판을 야합으로 이리저리 오염시키는 ‘닭대가리’들도 이래야 없어진다.
미국의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은 보수정당인데 비해 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은 진보정당이다. 우리도 이같은 양대정당체제로 나갈 때 국민을 보다 편하게 하는 정치판이 될 것이다. 정책경쟁이나 공약에 대한 책임도 이래야 확실해진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어느 한쪽이 먼저 합당해 보이면 양당체제의 기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불가능하다. 대선 이후에 불가피하게 있을 정치권 개편에서 이러한 대변혁을 기대하고 싶다. 가능하면 오는 2004년 총선부터는 보수, 진보의 양당 구도가 시도된데 이어 다음 대선에서는 제대로 정착되면 좋겠다. 이래야 선거 때마다 나도는 합종연횡의 야합은 물론이고 명분없이 훼절을 일삼는 정치인들도 거의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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