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렬(안성문화마을원장·도예가)
내가 있는 안성은 조선 3대 의적으로 이야기되는 장길산 임꺽정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선배 미술가의 이야기처럼 ‘왼쪽에는 꺽정이 형님 오른쪽에는 길산 형님을 모시고’작품을 하는 경지는 안될지라도, 나름대로 우리 선조들이 남긴 정신과 혼을 배우기 위해 그 임꺽정과 장길산의 이야기가 어려 있는 사찰을 찾곤 한다. 한때는 거찰이었다고는 하나 이제는 은행나무와 잎이 떨어진 감나무가 반겨주는 사찰에는 매번 느끼는 것은 “낮추는 마음”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우리 선조들이 그랬듯이 그 법당 한켠에는 묵묵히 자신의 소망을, 염원을 담아 불공을 드리는 이웃들이 있다. 자신을 낮추는 일일게다. 자신을 낮추는 속에는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지혜를 깨달을 분들일 게다.
우리는 낮추는 사람, 겸손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실제로 사회적 지위나, 성취에 있어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낮추어 오는걸 보면 저절로 존경의 마음까지 생긴다. 그렇지만 내가 낮추기란 쉽지 않다. 삶의 지혜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난 내 직업이자 삶이라 할 수 있는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도자기를 만들다 보면, 일은 사람이 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이 정한다는 말이 실감날 때가 많다. 확신하고 시작한 작품도 막상 가마에서 꺼낼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 아주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한 작품도 막상 가마에서 꺼낼 때 내 의도를 벗어나 당황케 한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새로운 구상으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할 때나 익숙한 작업을 할 때나 항상 가지는 마음은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결국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내 욕심, 내 재주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흙과 불과 공기와 선조들의 얼이 녹아서 그것이 내 손끝을 통해 표현되는 짓이라는 것을 나는 내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그런 마음을 구현한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과 내 직업이 하나가 되는 것, 삶과 분리되지 않은 작품활동은 내 소망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