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그리운 지조(志操) 정신

/양승본(영덕고 교감.소설사)

지조(志操)라는 것은 함부로 마음을 바꾸지 않고 지켜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굳은 지기(志氣)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조는 기회를 타는 기회주의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서 간에 붙고 쓸개에 붙으면서 자주 변심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과는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지조는 간신(奸臣)과는 아주 반대의 말이다.

더구나 지조는 충신의 길로 통하는 것이지만 간신은 아첨(阿諂,과 통한다. 아첨은 자기의 이득을 노리고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고 알랑거리는 것이기 때문에 간신은 아첨에 매우 능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간신과 전혀 다른 말은 충신(忠臣)이며 충신은 지조를 지키는 것을 으뜸으로 하면서 실천을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충신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사람이 성삼문일 것이다. 그 만큼 충신 중에서 성삼문은 돋보이는 인물이다. 물론 성삼문 뿐만 아니라 사육신의 지조(志操) 정절(貞節)이 모두 보통 사람으로는 따르기 힘든 정신이요 행동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손톱 밑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고통을 참지 못해 그 가시를 빼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 그러다가 스스로 빼지 못하면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참아내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하지만 성삼문은 빨갛게 달구어진 쇠를 이용하여 온 몸을 불로 지지고 계속 담근 질을 당했어도 자신이 가진 그 정신을 굽히지 않았다. ‘너는 어찌하여 짐에게 반항하느냐’는 세조의 말에 성삼문은 세조를 진사라고 부르면서 ‘내가 무슨 반항이요? 누가 자기 임금(단종)을 사랑하지 않겠소? 진사는 남의 나라를 빼앗은 사람인 것이오’라고 일편단심을 말했다.

‘아버지’를 부르면서 울부짖는 딸을 뒤로하면서 죽기 직전에 막걸리 한잔을 마신 후 읊조린 그의 시조를 보면 더욱 그의 지조가 얼마나 곧은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봉래산 제일봉에 낙랑장송 됐다가/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진리라는 것은 세월에 관계없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삼문은 현대로 말하면 의리(義理)의 사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리(義理)란 무엇인가? 신의를 지켜야할 교제상의 도리이며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옳은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요즘 세태(世態)는 지조와 관련되는 의리나 정절(貞節) 대신 변신과 아첨이 판을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치계의 경우에는 지조를 지키면서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일부의 정치인은 적당한 이유를 대면서 자신을 뽑아준 선민(選民)들과는 아랑곳 없이 쉽게 당적(黨籍)을 옮기는 일도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협의나 합의 보다는 서로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당의 입장을 주장하면서 옳으니 그르니 하다가 욕설까지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가끔은 듣기에 민망한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혹자는 말하기를 철새 정치인이니, 기회주의이니 하면서 떠들어대기도 한다. 또 선거 때마다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도 많다들 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현대인에게 옛 선비들이나 정치인들이 지녔던 지조를 말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그리워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조라는 그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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