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 천국/ 전미희
외국영화를 보노라면 우리네 쌀포대 같은 누런 종이봉투를 든 여주인공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나 스위트 노벰버의 샤롤리즈 테론은 세련된 의상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종이봉투를 가슴에 안은 채 스크린을 누빈다. 그들은 종이봉투에서 온갖 식료품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닐봉지를 선호한다. 과일이나 과자를 사도 그렇고 문구나 도서를 구입해도 마찬가지다. 또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도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너도나도 비닐봉지에 중독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는 분리수거가 잘 지켜지는 편이다. 주민들은 정해진 요일과 장소에 쓰레기를 버리고 음식물 재활용기를 따로 마련하여 물기를 제거한 음식물쓰레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음식물 재활용기 주변에 늘 비닐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어 지나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는 각 가정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느라 사용한 봉지들인데 음식물쓰레기를 위한 전용 바구니를 준비하지 않은 탓이다.
필자는 시장에 다닐 때면 비닐봉지를 챙겨 간다. 집안 곳곳에 굴러다니는 봉지를 재활용하자는 마음에서다. 언젠가 과일을 산다음 가져간 봉지에 담아달라고 하자 상인은 못내 귀찮다는 표정이다. 게다가 ‘다음엔 그냥 오라’고 덧붙이며 ‘그것 좀 아껴서 뭐하냐’고 너스레를 떤다. 돌아서는 발길이 개운하지 않은 건 당연지사다.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독일과 체코에서는 사상 초유의 홍수 피해를 입었고 페루에서는 이상한파로 인하여 혹한이 몰아 닥쳤다. 비슷한 시기 남아공에서는 폭설이 내려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아시아는 황사먼지로 뒤덮이기도 했다. 정상적인 자연현상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환경을 무시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일삼은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자연의 경고를 겸허하게 경청하고 환경의식을 고취해야 할 때다. 환경보존은 거창한 슬로건이나 정책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썩지 않는 비닐봉투를 덜 쓰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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