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서양사람이 한국을 여행한후 소감에서 검은색 자가용이 많은 나라, 권위주의적이며 근엄함이 표정에 배어있는 나라라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폐허가 된 땅을 일구어 내느라 여유가 없었고, 산업부흥을 일으켜 한강의 기적을 이루다보니 앞만보고 달리던 습관이 몸에 배어 제2의 천성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다. 또한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와 해방후 수십년 이어져 내려온 군사문화에서 비롯된 경직된 표정과 권위주의적인 사상까지 몸에 배어 있던게 사실이다. 보릿고개도 잊은지 오래고 IMF 사태도 졸업했건만 반짝했던 얼마전 전성기의 추억을 잊지 못해서 그런지 모든 국민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지고 근심기가 역력하다.
보름전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아파트 뒷동산인 영장산을 산책하던 중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했다가 아주 낭패를 겪은 일이 있다. 새벽 어둠이 걷혀가는 산자락에는 발빠른 장끼가 푸드득거리며 경쾌하고도 명랑한 특유의 아침인사를 하기에 나도 덩달아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더니 묵묵부답인 표정에 뭐가 잘못된 사람인냥 힐끔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젊은 나이에 안됐다는 표정인지, 아니면 뭐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인사를 한 내쪽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저녁에 무슨 일이 잘못되었나 아니면 삶이 고달퍼 만사가 귀찮은지 그저 무표정한 얼굴에 말없이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장거리 산행을 하다보면 낯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생기에 넘치는 밝은 표정으로 수고하십니다, 반갑습니다 하며 가파른 길을 오르는 자에게 양보하며 건네주는 정겨운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과 용기와 위로를 느끼는 것은 오래된 관례다. 하물며 이웃에 사는 동네 사람끼리 만났는데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니 참으로 민망하고 쑥스럽기 짝이 없다.
한번 시작한 인사를 그만두자니 뒤를 이어 오는 사람에게는 미안하기도 해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 인상이 경직된 상태에서 인사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 목소리가 너무 허스키해서 그랬는지. 내일은 내가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해보자, 매일같이 해보자 오기가 발동했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인데 오늘 하루 모든 일이 두루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십시오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인사를 계속해도 반응은 여전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십여일이 지난 어느날 새벽 먼발치에서 나를 알아본 상대방이 먼저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아! 의식과 정서가 바뀌고 있구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다정 다감하게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아니 고맙습니다라며 허리숙여 인사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밝아지며 엷은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
목소리가 경쾌해지며 마음이 즐거워졌다. “건강하십시오 또 행복하세요.” 이땅의 모든 사람들이여 밝은 얼굴로 명랑한 목소리로 희망에 찬 내일을 설계하며 힘차게 외치자.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임정복 경기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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