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목련이 지기 전에

“한 달만 쉬면 안될까요”

함께 일하면서 무척 아끼던 아이가 어렵게 꺼낸 말이다. 몇 달전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마치 듣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부딪치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가족이 철 지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도 정신없이 밖으로만 뛰었던 나는 기운이 빠지며 혼란스러웠다. 이럴때는 단순노동이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옷장문을 활짝 열었다. 내 마음을 정리하듯 옷들을 정리하다 보니 구석구석 필요도 없는 옷들이 왜 그렇게도 많든지. 옷들이 있을 자리를 찾아 정리하고 보니 몸까지 가벼워졌다. 옷 하나를 정리해도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데 불필요한 감정들을 떨쳐 버린다면 얼마나 산뜻할까.

나를 믿고 손을 내민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떻게 대했는가. 겉으로는 세계평화와 소외된 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이 일에 함께 뛰는 아이의 아픔이나 인권은 진정으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 ‘힘들어도 버티어야 돼’라며 애써 무시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아무도 우리에게 이 일을 꼭 해야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노력만큼 인정을 받거나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밤을 새는 일들이 허다하다.

이런 우리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서로를 보살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권은 누가 보장하며 지켜 줄 수 있겠는가. 자신이 소진되었음을 한 달만 쉬겠다는 함축된 말로 표현했건만 나는 조직에 미칠 영향만 생각하고 서운한 감정이 들어 그 아이의 아픔을 쳐다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하다.

목련이 지기 전에 그 아이의 손을 진심으로 잡아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내 마음자리에 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권은수 (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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