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마, 성인레저로서의 발전적 대안

10~20대가 소비의 주류로 부상함에 따라 현대를 사는 성인들은 ‘시대적 마이너리티’로 전락해 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중이 누리는 문화’ 대중문화는 실상 대중이 아닌 10~20대 만을 위한 문화로 전락된지 오래다. 영화를 보려해도 대세는 ‘조폭’코미디거나 미국 블록보스터이다. 문화적 코드도 맞지 않거니와, 영화관을 가득 메운 이들과 그들만의 위락시설을 보노라면 메워질 수 없는 듯한 정서적 간극에 기가 죽게 마련이다.

동양권에서 성인들이 즐기는 대중적 놀이문화의 대표적 사례로 중국의 마작을 들 수 있겠다. 한 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마작은 중화권에선 공인된 성인들의 대중문화이다. 국토가 넓은 구미에서는 골프도 훌륭한 성인들의 대중문화다. 인내심과 집중력을 요하는 골프는 아무래도 젊은 세대보다는 성인의 입맛에 맞고, 또 비용도 저렴해 대중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국토가 좁고 놀 거리도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어른을 위한 대중문화를 찾기란 무척 어렵다. 비즈니스 문화에서 시작해 성인들의 취미로 저변을 확대한 한국의 골프는 주 이용층이 30대 이상이라는 점에서 성인들의 문화로 분류될 수 있지만, 비용과 접근 용이성 등에서 아직 서민들에겐 거리감이 느껴진다. 유교문화권 공통 오락인 바둑을 보자. 한국에서 바둑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장점을 앞세워 30대 이상의 남성을 중심으로 두터운 이용층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바둑 프로그램 개발로 더욱 접하기 쉬워졌다. 성인 취향임이 분명한 바둑은 그러나 이용자 성비가 지나치게 한 쪽으로 기우는 탓에 대중적이라기보다는 배우 마니아적 혹은 남성적 오락에 가깝다.

최근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뉴질랜드의 엘러슬리 경마장에서는 노부부들이 한가롭게 춤을 즐기는등 경마장 자체가 성인들의 사교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경마가 단일 대상을 넘어, 공간적 개념의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한 방송 내용은 유럽의 경마 인기가 어느정도인지 가늠케 해 준다. 프랑스 인기 풍자뉴스(Les guignols)에서는 방송사들이 경마 중계투자에 혈안인 것을 빗대, 방송사 사장이 경주마와 결혼하는 장면으로 세태를 꼬집을 정도다. 이러한 외국의 모습은 한국의 경마관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왜곡되었는지를 시사하는 동시에 경마가 한국 성인 대중문화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마는 최근 몇년간의 급성장에 힘입어 많이 변모했다. 과거의 경마가 ‘패가망신’, ‘도박’과 동의어였다면 현재는 ‘게임’이나 ‘휴식공원’과의 동의어다. 벚꽃이 한창인 요즘 경마공원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여인들,아기를 안고 온 젊은 부부,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경마팬들로 북적거린다. 40~50대 남성들이 주요 방문객이던 과거를 생각해 보면 시대가 변함에 따라 경마 고객 또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미 연 인구 1천600만명에 육박, 대중문화의 외적 성장을 이룩한 경마는 이제 국민적 이해와 지지속에 한국형 성인대중문화의 대안으로 모색되는 시기를 맞고 있다. 수려한 자연 속 스펙터클한 경주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때 경마의 흡입력, 느껴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다. 또 말의 원시적 역동성과 흙투성이가 앳된 기수들의 젊은 힘은 경마만이 갖는 특유의 매력이다.

지엽적인 부분만을 보고 배척하기 보다는, 바람직한 성인레저의 범주 안에서 경마를 키워가야 할때다. 제대로 이해하고 즐긴다면 경마는 바람직한 성인 레저스포츠가 될 수 있다.

/조정기.마사회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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