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라크전쟁을 포함하여 20세기 이후에 발발했던 대부분의 전쟁 중 극히 일부의 민족분쟁이나 국지전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국제석유시장을 확보하려는 제국주의적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미국기업이 획득한 이라크 석유조광권이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유, 표면적으로는 1968년 이스라엘에 빼앗겼던 시나이반도를 되찾기 위해 벌어졌던 아랍-이스라엘간 제4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OPEC의 친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엠바고)로 빚어진 1973년의 1차 석유파동, 1979년 이란혁명에 뒤이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빚어진 2차 석유파동,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으로 시작된 걸프전 사태 등이 모두 석유자원을 둘러싼 자원민족주의 차원에서 발발했던 전쟁이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나는 형국이 연출됨에 따라 국제유가의 불안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벼랑 끝에 있는 이라크의 잔당들이 화학무기를 사용한다거나 유정에 불을 지르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 국제 원유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유가는 언제라도 다시 폭등할 수 있다.
이번 이라크전쟁은 에너지 부문 이외에도 수출에 큰 타격을 입히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다잡아야 할 것은 생활 속의 에너지절약의 자세이다. 물론 에너지를 안 쓰는 것만으로 현재의 사태를 극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효율이 높은 기기를 개발하고 획기적인 제도를 도입해도 우리 마음속에 에너지절약의 당위를 인정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없다면 역시 무용지물이다.
특히 에너지절약은 지금과 같은 에너지위기에 가장 효과적인 대처방안이며, 선진국에서도 갑작스런 에너지 부족사태를 겪게 되면 에너지절약을 최우선 정책으로 선택한다. 우리와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현재 일본의 도쿄도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다. 사용하는 전력의 상당부분을 공급하던 원자력발전소에 이상이 발생하여 무려 14기의 원전이 한꺼번에 가동을 중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도쿄 당국의 대응방안은 다름 아닌 에너지절약이었다. 지난해 말에는 자원부국인 노르웨이가 전력 부족사태에 직면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대처방법도 역시 에너지절약이었다.
절약만으로 에너지공급부족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단기적인 수요 절감에는 큰 몫을 하는 것이 에너지절약이며, 또 이렇게 에너지절약에 참여하는 선진국민들의 자세가 바로 에너지위기를 극복하는 기틀이 된다.
이번 이라크전쟁에 대응해 정부에서는 전기·가스의 절약사용 가정에 대해 현금을 되돌려주는 에너지절약 캐시백 제도를 시행하는 등 가급적 강제적인 규제보다는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시책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시행은 안했지만 이라크전쟁의 장기화와 유가폭등에 대비하여 강제적인 에너지 수급정책을 시행하는 시나리오도 준비했었다.
하지만 제도적인 통제는 항상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게 되며,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이다. 기업가로서, 근로자로서, 또 가정주부로서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다면 강제적 제도의 필요성은 한결 줄어들 것이다.
/차재호.에너지관리공단 경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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