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경주를 걷는 기분이 그런대로 좋다. 경주에 비교적 자주 가는 편인데 저 멀리 보이는 무덤의 관능적인 선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 무덤을 보고 좋아하는 눈이라니! 죽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상에 세운 표지는 불사와 불멸을 증거하며 부드럽게 드러누워 있다. 우리 나라 전국토에 엠보싱 마냥 봉긋하게 솟은 무수한 무덤들을 떠올린다.
이른 아침 비행기로 울산공항에 내려 경주까지 내쳐 달려오는 중에 조금씩 봄비가 거세지고 있었다. 선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강소 전시를 둘러보고 잠시 잔디밭에 나와 숨을 고른다. 싱그러운 공기와 풀 냄새, 비에 젖은 땅 내음이 훅하고 덤벼든다. 어쩐지 이곳의 모든 나무와 풀조차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역사의 무게를 드리우고 있어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식물성, 돌맹이와 사금파리 조각 하나에도 먼 왕조의 숨결이 서식하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 상상의 불을 지펴 과거로 치닫게 한다. 2시간 가량 강의를 하고 나와서 다시 공항으로 달렸다. 바쁜 일정에 불국사나 석굴암 아니 어느 능 하나도 보지 못하고 가는 처지가 아쉽고 처량하지만 차창밖으로 사라지는 경주풍경만큼은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경주에 오면 늘상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김근태는 대구 출신이지만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곳 경주에와 산사에 딸린 조그만 집 하나에 기거하면서 세속세상과 인연을 끊고 손수 나무하고 밥지어 먹으면서 그림에만 몰두했던 이다.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그가 그려낸 그림들은 단호한 어둠의 색인 검정으로 그려진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들이었다. 밤새 손으로 흑연을 문질러 그린 그 그림들은 명징한 정신의 직립처럼 다가왔었다. 한쪽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으로도 경주에만 내려오면 늘 역앞에서 기다리던 그였다. 그와 함께 경주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기억이 선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을 지나치게 혹사시켜 근육암이란 희귀병으로 올 초에 죽었다. 그를 기억하는 몇인가의 사람들만이 죽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20년이 넘도록 경주의 그 초라하고 궁핍한 2평 정도의 방 한 칸에서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면서 살았다.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삶은 마치 종교적인 수행의 삶이기도 했다. 물론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그런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날 누가 그림 그리는 삶, 일을 그렇게까지 밀어붙여 해나갈 수 있을까. 경주에 오면 치열한 삶을 살다간 그가 그리워진다. 산 자들은 모두가 비겁하고 옹졸해 보인다. 아니 내 자신이 그렇다.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 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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