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훔쳐보기'

가끔은 텔레비전도 쓸만할 때가 있다. 얼핏 지나가는 화면을 고정시켰다. 기인처럼 생긴 한 소설가가 얘기를 한다. “예술이란 결국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외면이든 내면이든 아름답지 않은 것을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아름다워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뒤집어서 내게 아름다움이 있어야 그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 새롭게 울려온다.

다른 채널을 돌려본다. 피아졸라의 음악이 아주 잘 어울리는 안트리오의 피아노 삼중주가 연주되고 있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연주가 끝난 후 진행자가 묻는다. “음악에 활력을 주기 위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여행이고 두 번째는 하고 싶지 않은 것 안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것 안 하기’, 안트리오라 안 하는건가. 거 참, 기분 좋게 당돌하구나. 당장 안트리오 앨범 하나 사야겠다. 헌데 왜 이 대목에서 시인이자 목사인 한 선배형이 생각날까. 서재로 달려가 그의 책들을 모조리 꺼냈다.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등의 시집과 산문집, ‘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 ‘나무 신부님과 누에성자’ ‘부드러움의 힘’을 닥치는 대로 뒤적이며 훔쳐보았다.

종교와 문학, 성과 속 사이를 부단히 서성거리며 부대꼈던 그의 고뇌의 흔적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 삶 한복판에서 ‘우주적 영성’을 발견하고 ‘일상의 성화’를 통해 화해를 이루어 나가는 그 진지함과 절묘함이 참 아름답다.

글쓰기를 자신의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믿는 그는 시쓰기를 통해 넓고 깊은 영성의 바다로 나아간다. 그는 옻나무가 온몸이 칼금투성이가 되면서 내어주는 진액이 썩지 않는 불멸의 재료가 되는 것을 보고, 상처 속에 빛나는 아름다움과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갖는다.

그가 기록한 시 한편을 음미해 본다.

과일의 껍질을 벗기면/과일의 몸에서/짙은 향기가 퍼져 나온다//알맞게 잘 익은 과일이다// 과일의 껍질 같은 옷을 벗기면/그윽한 향기를 뿜어내는 사람도 있고/견딜 수 없는 악취를 풍겨내는 사람도 있다//껍질만 화려한 박제의 시대//하지만/누더기 옷을 걸치고도/향기로운 사람이 있느니//누더기 옷을 벗으면/더욱 그윽해지는 사람도 있느니//

껍질만 화려하고 말만 무성한 시대에 그윽한 속향기 풍기며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아름다운 사람 만나 함께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 속내를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장병용.수원 등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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