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키스해 주세요

학동 흰 파도 / 검은 조약돌에 부서질 때마다 / 사락사락 입맞춤하는 소리 / 진저리쳐지도록 싱그러운 / 망산의 초록빛 뜨거운 혀를 / 해금강물 깊숙이 들이밀다가 / 홍포 절벽 앞에 / 봉곳봉곳 떠 있는 / 젖무덤에 머리를 쳐 박고 / 울어버리다.

시 한 수 끄적거리며 거제도 해안가를 거닐고 있을 때, 젊은 연인이 흰 파도 앞에 앉아 깊게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는 여자가 뒤로 가서 남자의 등에 가슴과 얼굴을 묻고 한참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참 편안해 보였다. 어느새 뜨거운 불덩이 하나 내 속에 들어와 온몸이 떨려 왔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 ‘키스’는 장식적인 화려한 색채감과 남녀의 에로틱한 모습을 통해 신비하고 오묘한 관능적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커피 색 하늘에 금빛 보석이 뿌려졌고 풀밭에는 온갖 꽃이 만발한데, 한 쌍의 연인이 포옹한 채 입술을 맞대기 직전의 감미로운 순간이다. 여자의 움츠린 어깨와 얼굴을 두 손으로 다소곳하게 감싼 그림 속의 남자 옆모습은 여자들이 원하는 전형적인 남성상이다. 눈은 살풋 감고 남자에게 입술을 찍히려 교태를 부리듯 넓은 망토 안에 몸을 반쯤 숨긴 여자야말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요염한 자태다. 매달리듯 팔을 남자 어깨 뒤로 돌리고 무릎을 꿇은 여자의 맨발이 풀밭 끝 벼랑에 떨어질 듯 닿아있다.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거나 남자가 포옹을 풀어버리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숨막히는 사랑의 절정이다!

이 그림은 금빛을 주조로 각양각색의 색채를 맞추어 만든 조각보를 보듯 화려한 색채감이 보는 이들을 우선 압도한다. 남자의 망토 중 왼쪽은 주로 직사각형의 문양 속에 물결무늬를 섞었고, 몸에 꼭 끼는 여자 옷은 겹을 이룬 동그라미와 별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무늬와 색채감이 풀밭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그 조화로움과 화려함을 더해준다.

‘키스’에서 클림트는 겹겹의 옷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던 여성의 관능을 대담하게 밖으로 끌어내어 남성의 지배 아래 놓였던 여성의 평등과 화해를 시도했다. 즉 그는 여성을 통해 시대정신을 표출하면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새로운 시대에 주체로 여성성을 부각시켰던 탁월한 화가였다. 이 그림을 보면서 첫 키스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려 보라. 몸과 몸이 닿는 사랑의 황홀한 떨림, 부드러운 격려와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몸이 말하는 대로 사는 것만큼 정직한 게 또 있을까. 오늘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섹시하게 이렇게 고백해 보라. “키스해 주세요!”

/장병용.수원 등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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