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위암과 교통사고 사망률은 세계에서 불명예스럽게도 1위라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처럼 오래 사는 것을 최대의 복(福)으로 생각하는 민족이 암(癌)에 걸리고 차에 치여 죽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문화는 삶의 질과 폭을 넓혀준다. 우선 우리의 현실이 항상 북한의 ‘전면전’ 도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을 환상(幻想)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가치 관념이나 의식이 지나치게 물신(物神)주의에 병들어 있고, 거짓 아닌 위선을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체면’과 ‘겉치레’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삶의 위상에 보다 진솔하게 가까이 가는 자세가 없고, 숨쉬며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명적 사고도 없다.
원시시대는 배고프면 먹는 것이 문화였고, 그 다음시대는 하루세끼 먹는 것이 습관이고 문화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같은 음식이라도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을, 좋은 음악을 들어가며 먹는 것이 좋다. 말하자면 이 ‘좋은 곳’, ‘맛있는 것’, ‘좋은 음악’이 먹는 것과 어우러지는 문화의 시대이다.
지금은 분명히 ‘문화시대’에 와 있으나 실제 우리의 사고나 습관은 배고파서 뚝딱 먹어치우는 물질주의, 성급주의가 여전히 판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문화를 모른다는 것은 “먹고사는데 문화가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가 당장 먹고사는 일과 관계가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꿈꾸지 않고 사는 재주가 있는가. 웃지 않고, 울지 않고, 감동하지 않고 살수가 있겠는가. 옛 사람도 살았고, 우리처럼 비슷하게 생겼고, 그 사람이 우리의 할아버지였다는 확신과 그 느낌을, 문화와 예술이 아니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잘 입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감동할 줄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끝이요, 돈이 많아도 꿈꿀 줄 모르면 그 쾌락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이야 말로 삶의 질이 중요한 때이다. 보다 즐겁게, 보다 좋은 환경에서, 보다 좋은 기분으로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말을 바꾸면 보다 문화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문학이나 예술, 문화 문제는 항상 뒷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화를 모르면 밥 먹은 입에 암이 생긴다.’ 위암과 교통사고는 공통분모가 있다. 문화 부재와 조급성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문화란 눈앞의 일과 관련이 없는 듯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너무 눈앞의 일에만 관심을 두면 문화가 안 보인다. 눈을 감지 않으면 꿈을 꿀 수 없듯이, 눈앞의 일만이 세상살이라고 생각하면 늘 조급해진다.
문화는 원래 “땅파고 가꾸는 일 (cultura = cultivo)”이라는 말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하늘을 보고 땅파는 마음’을 모르면 ‘문명과 돈은 곧 암’이 된다는 것이다. 외부의 환경 보호만 시급한게 아니라 마음의 환경보호, 마음의 생명 중심적 사고도 중요하다. ‘삶의 진실성을 한순간이라도 망각하면 그 입에 곰팡이가 슨다.’ 예술이나 글은 그 원시적인 삶의 땀과 향기, 그 즐거움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기억하고 있는 음식들이다.
문화인은 두 곳에서 먹을 것을 얻는다. 그 한곳은 자연, 다른 한곳은 문화이다. 얼마 전부터 ‘신바람’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그 ‘바람’은 몸(자연)과 생활의 절주(節奏)가 맞닿는 곳, 즉 좋은 음식(자연)에 좋은 분위기(문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예술에 취하지 않고 글에 반하지 않는 사람은 돈이 천금이라도, 늘 죽음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인이 되어 문화와 함께 사는 것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이라 여겨진다.
/김종구.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 예절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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