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도심지 단풍 감상법 그리고 낙엽

늦가을은 단풍에서 시작되고 낙엽과 함께 떠나 간다. 단풍행락을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가 내장산 등의 장관을 전해준다. 산이 온통 빨갛게 물들여진듯 한게 정말 절경이다. 비록 단풍 구경하러 길을 떠나진 못해도 단풍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대 세갈래 갈림길 어귀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한 자원봉사 어머니들과 광교산을 들어선 것은 며칠 전이다. 광교산 계곡이 깊어질수록이 늦가을 단풍의 정취가 물씬 더 다가 선다. 단풍나무 잎만이 단풍이 드는건 아니다. 활엽수 이파리마다 빨갛게 물든 단풍이 광교산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내장산 같은 단풍의 명승지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이만한 단풍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광교산 자락 산책로 노변에 가꾼 단풍나무 단풍은 그야말로 늦가을 제철을 즐기는 지 위용을 더욱 뽐낸다. 그러고 보면 단풍을 도심지 거리의 가로수에서도 감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은행나무의 노랑 단풍 또한 단풍으로 늦가을 정경의 일품이다. 하늬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들이 속삭이듯 하는 은행나무 단풍은 단풍나무 단풍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지금도 은행나무 단풍잎을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어넣곤 하는 소녀들이 있을까, 이 나이 들어 새삼 어릴적의 그런 감상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은행나무 단풍잎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뭐랄까, 불타는듯한 빨간 단풍나무 단풍이 열정이라면 은행나무의 노랑 단풍은 평화로 비유가 된다.

한번은 야간 운전을 하다가 은행나무들의 노랑 단풍에 취해 길가에 멈춘 채 한참동안 마음속 대화를 나눴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노랑 단풍이 한층 더 농익어 보이는 자태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고개를 뒤로 제쳐 하늘을 배경삼아 보면 더욱 황홀하다.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과 시멘트 벽 투성이의 도심지에서 가로등 불빛과 은행나무 가로수가 앙상블을 이루는 늦가을 밤 노랑색 일색의 단풍은 정말 그림보다 더한 걸작이다.

생활에 쫓기는 일상으로 좀처럼 눈길 돌리기가 어려운 가로수 은행나무에서 단풍의 미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이도 행복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기분이 좋을 때나 언짢을 때나 한결같이 평화롭게 대해주는 은행나무의 노랑 단풍이 그래서 한량없이 고맙다. 하지만 단풍은 낙엽의 시작이다. 벌써 낙엽이 하루가 다르게 지고 있다. 아스팔트 차도, 보도블록에 떨어진 단풍잎이 바람부는 대로 이리저리 날리며 뒹군다.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다. 아무리 쌓여도 정감이 가는 것은 낙엽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무가 낙엽으로 제 뿌리를 솜이불처럼 덮어 마침내는 썩혀 거름을 삼고자 하는 자연의 섭리가 아스팔트 등으로 방해받는 것이 안타깝다.

하긴, 내장산 단풍나무도 낙엽이 질 것이다. 단풍놀이 행락으로 가고오는 찻길이 막히는 고생을 안하고도 나홀로 즐기곤 한 도심속 단풍 감상법도 이젠 다 되어간다. 이윽고 며칠안에 은행나무 가로수의 노랑 단풍잎이 다 지면 가지만 앙상해질 것이다. 그것은 이미 겨울의 문턱이다.

달력도 한장만 더 뜯으면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이 한해를 보내면서 상념에 젖어본다. 역시 올해도 속절 없이 보냈다. 이래서 두달도 다 남지않은 시일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삶의 중간엔 단풍도 낙엽도 없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지현.사단법인 한길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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