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왜 조물주는 인간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무력한 존재로 이 세상에 나오게 했을까? 한 초등학교 1학년, 아니 공상영화의 복제인간처럼 태어나자마자 한 몫을 담당하는 성인으로 태어나게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조물주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성인이 되어 태어났다면 과연 서로간에 상부상조하는 게 가능할까? 자기 뜻대로 안될 때 상대방에 대해 인내하고 기다려 주는 게 가능할까? 과연 가족이나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난 또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 아이가 이 세상에 처음 빛을 보았을 때부터 아장 아장 걷고,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기 시작할 때, 그 신기함과 귀엽고 사랑스러움은 말 안듣고 반항하기로 유명한 사춘기를 맞이한 내 아이를 보면서도 회상할 수 있어서 우리 모자관계는 유지되고 발전되어 가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까? 그것에 대한 답을 오늘은 대상관계이론에서 말하는 ‘이 정도면 충분한 엄마(good-enough mother)’에서 찾아본다. 보통 상담이나 부모교육에서 만나는 많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완벽한 엄마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엄마는 사실 자녀의 욕구에 맞추는 방식으로 자녀를 돌보기보다는 엄마의 욕구에 아이를 맞추게 되는 엄마로 아이에게는 긴장감과 불안감만 안겨줄 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한 엄마는 이런 완벽한 엄마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엄마도 아니다. 점수로 따지자면 한 7~80점 정도의 엄마라고나 할까? 이 정도면 충분한 엄마는 때때로는 아이에게 상처도 주고 실수도 하지만, 그건 전체 엄마의 모습 중 적은 부분을 차지할 뿐 많은 부분은 자녀에게 일관되게 애정을 표현해주고, 자녀의 마음을 예측할 수 있는 엄마이며, 자녀의 기본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자녀가 불안할 때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엄마, 그리고 자녀가 필요할 때 정서적 또는 신체적으로 자녀와 같이 있어 주거나 놀아주는 엄마를 말한다. 이런 엄마 품에서 자라는 아이는 자유롭게 자신을 탐색하며, 대상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아이는 세상을 탐험하는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한 엄마’이듯, ‘이 정도면 충분한 상담자’, ‘이 정도면 충분한 아내,’ ‘이 정도면 충분한 남편’이 되기로 하자.
/유순덕.경기도청소년종합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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