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출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안)을 놓고 수도권·비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국가를 균형있게 발전시키자는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싸우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법안의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5년 단위로 국가 및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의 산업, 과학기술, 정보통신, 문화관광, 농어촌개발, 지역경제, 대학 등의 지원시책을 추진한다. 다만 수도권 대학은 지원대상에서 제외한다. 수도권 소재의 공공기관은 단계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한다. 이들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정부에 균형발전특별회계를 설치·운영한다.”
얼른 보아 평범하고 선언적인 법안이다. 이 속에 엄청난 오류와 갈등요인이 숨어있다는 것을 일반인은 찾아내기 어렵다. 법안의 행간(行間)과 저간의 정부행태를 잘 읽어야 간신히 눈에 띈다.
이 법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지나치게 불균형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수도권이 과밀화되어 있다는데 이의를 달 국민은 없다. 1964년 대도시 인구집중 방지대책이 수립된지 40년,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만들어진지 20여년이 지나도록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해소는 커녕 확대시켜온 정부의 무능에 분통을 터뜨리고 싶다. 이제는 진정 국가의 균형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앙과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다같이 잘 살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법안은 효과도 의문시되고 방법도 잘못되었다.
정부가 제출한 균형발전법으로는 ‘균형’도 ‘발전’도 이루어 내기 힘들어 보인다. 균형발전을 위하여 연간 5조원의 특별회계를 설치운영한다고 하지만 이 돈은 규모도 적을뿐 아니라 새로이 늘어나는 재원도 아니다. 농특세니 지방양여금이니 해서 다른 이름으로 지방에 주어왔던 돈이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농촌에 46조원을 투자해 왔다. 앞으로 10년간은 119조를 투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농촌이 이제 희망과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눠먹기식의 운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도 결국 ‘하나마나한 법’, ‘지방을 기만하는 법’이 될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재원규모를 늘리면 되지 않을까. 국회에서는 10조는 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10조로 늘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답답한 것은 10조로 늘리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않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 법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에 불만과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든 안 되든 수도권은 재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얼마동안 불이익을 피할 수 없다. 수도권으로서는 감수해야 할 업보(業報)이기도 하다. 그런데 법안은 계획만 좋으면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관계없이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지금도 수도권에 대한 각종 투자가 제한되고 있는데, 법이 제정될 경우 더 강화되면 강화됐지 어떻게 완화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법안은 “지방이라 함은 수도권외의 지역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도권을 지방에서 제외해서 수도권에 대한 지원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2중 3중의 잠금장치를 하고있는 것이다. ‘지방’은 ‘중앙’과 맞서는 개념이다. 그런데 ‘수도권’에 맞서는 말처럼 되고 말았다. 서투른 입법기술이고, 배척되어야 할 이분법적 논리다.
국가균형발전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첫째, 지방분권을 제대로 이행하면 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특별법’이 제정되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선진국의 예를 보면 ‘분권화’는 지역균형발전의 알파요 오메가다. 지방분권법을 빨리 통과시킬 일이다.
둘째, 국가균형발전은 법이 없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어 못하는 것이라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균형발전을 시키는데는 2001년에 개정된 ‘산업입지개발법’만한 좋은 법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때 했던 것처럼 울산, 광양, 대덕 같은 산업단지를 필요한 곳에 하나 둘씩 만드는 것이다. 거점지역을 골라 인구 30만 내지 50만의 연구·산업도시를 만들어보라. 나라의 기운(氣運)이 달라질 것이다. 산업단지에는 공장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지식·문화·정보통신 관련시설과 이와 관련된 교육·연구·주거·의료·관광·체육·복지·유통 시설이 집단적으로 설치되도록 되어있다. 46조를 들여 행정수도를 만들 것이 아니라 이런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통치권자가 정책의지만 있으면 지역도 살리고, 산업도 살릴 수 있는 제도가 얼마든지 있다.
정부관료들의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이 안타깝다. 수도권으로서는 과밀화도 지원도 반갑지 않다. 오히려 비수도권의 발전이 수도권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잘안다. 쓸데없는 규제로 수도권 주민을 화나게 하지도, 신기루 같은 요설(饒舌)로 비수도권 주민을 들뜨게 하지도 말아야 한다. 정책은 어디까지나 정직하고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이철규 경기개발연구원장·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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