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원미술전시관에서 본 그림 한 점은 저에게 잔잔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인이 홀로 앉아서 하프를 연주하는 그림이었습니다.
한쪽 눈이 안대로 가려져 있는 그 여인은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지만 하프는 단 한 줄만 남겨진 채 모두 끊겨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림 밑에 ‘희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줄을 믿고 연주를 멈추지 않는 희망이라는 그림이었습니다.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정열입니다. 청년은 희망의 환영(幻影)을 가지고 있고 노인은 상기(想起)의 환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는 뜻입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실직한 중·장년층 남성들이 재취업을 포기한 채 자포자기 상태에서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이제 취업만 시켜준다면 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입니다. 취직이 안되더라도 면접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이른바 명문대출신의 볼멘 소리입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아직도 명문대생이 나오면 ‘축 명문대 입학’이라는 현수막이 내 걸리고 동네 잔치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될 정도입니다. 기업들이 대학간판만을 보고 인재를 뽑던 시대는 지났기 때문입니다. 명문대도 더 이상 취업난 무풍지대가 아니고 고학력이 오히려 취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정치권이나 경제권에서도 뚜렷한 방책이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스무 번이나 서류전형에서 탈락된다면 두통에다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을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당사자뿐만 아니라 뒷바라지한 부모님들의 실망감은 누가 달래 줄 것입니까.
더 이상은 못 간다며 넘어지려는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마지막 남은 한 줄을 믿고 하프연주를 멈추지 않는 희망이라는 그림처럼 무릎을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해야합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네 삶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훈동.수원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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