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 속에는 하기 쉬운 일도 있고 하기 어려운 일도 있게 마련이다. 인생살이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죄를 안 짓는 일이고, 둘째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Forgiveness)하는 일이다.
인간이 죄를 짓지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람이 어떤 특정종교를 갖지않고 있더라도 선하게 살아야할 책임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죄를 짓지않고 선하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남을 용서하는 일일 것이다.
용서(容恕)란 무엇인가. 동양적 의미에서 容(얼굴용, 담을용, 용납할용, 용서할용)은, 즉 집(家)안일로 골짜기(谷)처럼 너그러운 주름이 파인 얼굴을 뜻하며, 恕(어릴서, 동정할서, 용서할서)란 같을 여(如)에 마음심(心), 즉 네 마음과 내 마음이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에는 고의든, 실수에 의한 것이든 상대의 잘못이 전제되며, 그 상대의 잘못에 의해 우리가 또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게되는 것이다. 상대는 정부단위에서는 중앙과 지방, 단체와 단체, 직장에선 상급자와 하급자, 동료, 가족관계 등 광범위하다. 그러나 그 잘못이 어떤 것이든 문제 삼지않는 것이 용서이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 젊은 조수의 부주의에 의해 중요한 시기에 페인트 몇방울을 흘렸다. 다빈치는 진노하여 젊은 조수에게 심한 말을 마구하며 꾸짖었다. 그 소년은 울적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 버렸다. 다빈치는 혼자 쓸쓸히 그림을 계속 그리려고 붓을 들었으나 갑자기 손이 얼어붙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창조력을 봉쇄시키고 말았다. 결국 그는 붓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나가서 울고있는 그 소년을 찾았다. 그는 소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사과하였다.
다빈치는 소년과 함께 화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붓을 잡고 그림앞에 앉자 다시 창조력이 생겨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다. 그 연약함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고자 하지만, 결국 많은 잘못과 시행착오를 되풀이한다.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다”고 노래했지만, 정말 그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일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면업무를 추진하면서 수많은 갈등속에서 상대의 잘못을 사랑으로 감싸고, 이해로 포옹하는 용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위다.
카네기는 ‘용서하는 자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그 불완전 때문에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 그 잘못은 서로 감싸주고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용서의 방법에는 우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를 인정해야 한다. 그후 자신의 불이익에 대한 적개심을 되갚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이다. 계미년을 보내면서 상대가 누구이든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현대사회의 진정하고 아름다운 지도자로 남게 될 것이다.
/박원용.국가전문행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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