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에서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재의결했다. 209표라는 압도적인 재의결 찬성은 민주주의절차에 의한 것이지만 또한 협상정치의 부재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기본적인 규칙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러나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받을 수도 있다.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협의의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하여 다수뿐만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도 감안하여 서로의 입장 차이를 협상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조정하고, 그 후에 상호간의 조정된 의견을 다수의 찬성을 통하여 의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협상과 협의이다.
금번 특검법의 처리과정을 보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각각의 입장차이는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의 참여를 최우선의 국정운영원칙으로 삼고 있는 노무현 정권이 왜 협상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국회를 불신임하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일반국민들에게 비치는 정치권은 신뢰수준이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국회는 제도적으로 국민을 대표하기 위한 기관인 동시에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모두 국정에 반영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사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 물질적 제약으로 선거과정과 국회의 구성을 통하여 민주주의는 운영되는 것이며, 국회의원은 국민들로부터 직접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인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자신의 국회에 대한 불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즉 제도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일반국민에게 더 많은 호소력이 있다는 소신으로 국회와의 협상보다는 법률안 거부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특검법이 통과되고 이 사안에 대한 더 이상의 협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협상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는 국회의 파행, 민생법안의 처리연기, 국정의 혼란, 갈등의 심화 등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국가운영이란 책임을 수반하는 자리이다. 국정운영 책임자의 아집과 독단은 서민의 고통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정당간의 의견차이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한쪽의 의사가 자신의 의도만큼 시행되지 못하더라도,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대표성을 부여받은 국회의 권한을 의도적으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열린우리당의 유시민의원이 얼마 전 시사토론프로그램에서 “법률안 거부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라고 표현하며, 제도적으로 명시되어있는 거부권행사가 왜 문제냐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제도에 의해 운영된다. 또한 이제 제도적으로 명시된 절차에 따라 특검법은 재의결되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도 모두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은 파행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계속적인 협상과 협의의 과정을 거쳤다면, 역사속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이러한 균열적인 정치행태는 없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국민만이 아니라 다른 국민들의 뜻도 노무현 대통령은 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현정권이 독단을 넘어 협의의 정치를 할 수 있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바랄뿐이다.
/신보영.경기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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