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창밖을 내다본다. 햇빛을 가득받은 라일락 꽃과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바람이 부는가 보다. 어제 만난 사람이 떠오른다. 3년여만에 만났는데, 처음에는 약간 나이든 것 말고는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변함없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도 자신의 성격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고쳐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전보다야 노력한 결과가 있는지 사람들과의 교제나 외부활동은 나아진 부분도 있다. 결국엔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되었고 관련서적을 읽으면서 드디어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를 찾았다.
이름하여 ‘고정관념’, 자신이 계속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내성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무지하게 애를 쓴 결과, 말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 남들 앞에 서는 것도 수월해졌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다행이다 싶었는데, 대화가 진행되면서 그가 또다시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갇혀 있음을 본다. 4시간여를 만났는데 내 머리에 조차 새겨질 만큼 ‘고정관념’ 단어를 많이 들었다.
자신을 설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찾은 그 단어가 이제는 삶 가운데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는 코드가 되어있다. 자신 안에 어떤 문제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깨뜨려야하는 고정관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또 하루하루 그것을 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연장자인 관계로 몇 가지 조언을 하긴 했지만, 헤어질 때에는 오히려 새롭게 지명된 고정관념을 어깨에 한 짐 지고 큰 숙제를 받은 아이처럼 힘없이 돌아갔다.
나도 어디엔가 갇혀 있지 않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거의 같은 공간, 늘 비슷한 문제와 해답들, 생각들, 관점들… 어느날 우물에서 빠져 나왔는가 싶었는데, 그곳이 좀 더 큰 우물일 뿐이라면 그야말로 해와 달의 오누이처럼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온전히 구출해 주기를 기도해야하겠지, 결코 끊어지지 않는 굵고 튼튼한 줄로. 아무래도 밖에 나가 햇빛과 바람을 직접 만나야겠다.
/임용걸.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의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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