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은 시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에게 아이들이 하는 말, “아빠, 놀아 줘”. 아마도 놀아달라는 아이들의 말에 거의 대부분의 아빠는 “씻고, 밥 먹고…”하고는 말을 얼버무리고 마는 것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속으로는 ‘씻고 밥 먹는 동안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었으면’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정말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참 힘들다. 도대체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도통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고 느껴진다.
얼마 전 신문보도를 통해서 인용된 월간 ‘좋은엄마’의 아빠의 육아참여시간에 대한 조사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평일 0시간, 휴일 0시간’이라는 답변이 무려 12.5%나 되었다. 또 아빠들의 육아참여가 저조한 이유 중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많았단다.
아무리 힘들어도 1주일에 1시간도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들이 그렇게 많다는 점이 충격적이고,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많은 이유라는 그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크고, 집에 가면 그저 쉬고 싶은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마는 그 이유의 전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맞벌이를 해야만 먹고사는 이 시대상황에서 아빠도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엄마도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니 도대체 아이들에게 엄마·아빠의 역할은 누가 해야하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엄마·아빠가 아이들에게 베풀어주는 은혜가 아니라 오히려 의무다. 또 아이들이 엄마·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함께 해 달라고 할 시기는 매우 한정돼있다. 시간이 지나 엄마·아빠가 한가해져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어도 더 이상 아이들은 엄마·아빠와 놀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일정한 시간(아마도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까지가 아닐까)이 지나면 더 이상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아빠에게 놀아달라고 떼쓰는 것이 엄마·아빠에게 베푸는 아이들의 은혜가 아닐까. 놀아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엄마·아빠가 고맙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주형.변호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