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가끔 아주 가끔 내 지나온 삶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때가 있다. 짧지 않은 내 삶 햇빛의 날들과 어두운 구름, 갖가지 달랐던 비들의 무게, 차가운 바람과 꽃향기 가득 실린 아름다운 바람까지… 그 많은 날들 나는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서 있었던가?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으며,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제 앞으로 살 날 보다 살아온 날들이 이미 많은 내 삶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수년 전에 ‘Dead man walking’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데이트하던 한쌍의 남녀를 아무 이유없이 강간하고 살인한 한 사형수와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애쓰는 한 수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영화가 끝나고 나는 한 순간 마음이 막혀 오는 아픔을 느꼈던 것 같다. 끝까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그 남녀’ 때문에 자신이 사형수가 되었다고 말하는 비틀어지고 왜곡된 한 인간이 마지막 죽음의 시간에 비로소 생명이 무엇인지 깨닫는 장면 때문이었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은 너무나 흔해서 이제 그 의미마저 퇴색되어 버렸다. 수도 없이 이런 저런 경우에 그 말을 듣지만 그것이 어떤 뜻인지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어찌 그 사형수 뿐이겠는가? 인간은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생명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비로소 아는 참으로 슬픈 존재다.

내 삶을 잘 살아내고 싶다. 오늘 같이 지나간 삶이 떠오르는 날이면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하다. 많은 시행착오까지도 끌어안는 겸손함과 끝까지 놓지 않는 꿈 하나가 나의 삶을 지키는 푯대가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난날의 꿈들이 이미 사라져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때로 가슴을 흔들며 우리를 손짓해 부르는 것들이 있다. 너무 조각나 있어 그것이 꿈인 것조차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조각들을 주목하라. 조각이 모두 맞추어지면 진솔한 내 삶이 다시 그려지리라. 화려한 삶은 아니지만 눈물과 슬픔, 약간의 만족과 행복, 아픔, 좌절, 마침내 무의미만으로 끝낼 수 없는 소중한 우리의 삶을…. 마지막 임종의 호흡으로 사는 지혜를 그 그림이 가르쳐줄 것이다.

중요한 것을 늦기 전에 깨닫는 기쁨이 올 것 같은 기대가 이 아름다운 계절에 새롭다.

/임용걸.성빈센트병원 의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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