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많은 이들이 이웃집 드나들듯 하는 터에 중국 다녀온 게 대수로울 것은 없다. 기행문 역시 그렇지만 굳이 쓰는 덴 이유가 있다. 중국 특히 베이징은 불과 4년전에 갔을 때에 비해 아주 판이했다. 중국인 저마다의 얼굴엔 희망이 차있고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자신감으로 꽉 차 보였다. 중국인들을 가리켜 대륙 기질이라지만 그들도 감정을 지닌 인간이다. 이상할 만큼 사회생활에서 화내는 것을 통 볼수가 없어서 어느 요인에게 물었다. 그 대답이 걸작이다. “돈 벌기가 바쁘니 화낼 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진담 반 농담 반이지만 알고보면 농중 진담이다. 음력설 덕담으로 우리는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하는 데 비해 중국 사람들은 “돈 많이 법시다”라고 하는 게 설날 덕담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이런데도 중국인의 치부 관념은 자본주의 나라인 우리보다 더 억센 것 같다. “돈 버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상당 수의 베이징 시민들에게 들은 한결같은 얘기다.
그들은 그래서 하다못해 식당 보이 조차 자신이 하는 일을 참으로 즐긴다. 엽차물을 몇모금 마시기가 바쁘게 돌아가며 컵마다 가득히 채워주는 젊은 점원의 친절은 그러므로 일하는 재미에서 우러나오는 게 역력하였다. 많은 중국인들은 정말 못견디게 화가 치밀면 웃어버리는 것 같았다. 기가 막히는 똑같은 일일지라도 먹은 게 소화도 안 되게 화를 내기보다는 어처구니 없더라도 웃어버리는 게 감정이 격한 순간의 그릇된 판단을 막을 수가 있는 그들 나름의 생활의 혜지가 아닌가 생각됐다.
공원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기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하늘을 보며 손발을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기공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화를 잘 내는 우리의 생활 습성에서 보면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현실을 그토록 슬기롭게 타개해가고 있다.
베이징 거리도 차량통행이 정체될 정도로 자동차가 많아졌다. 그 자동차 물결속에서 대우며 현대 마크도 선명한 국산차가 많은 것을 보면 내가 국내의 어느 거리에 있지 않은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만 한 것은 한국인의 긍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긍지가 얼마나 더 오래 갈 것인가는 앞으로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베이징시 한 요로의 말에 의하면 5천여명의 중국인 박사가 곧 귀국한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미국과 서구 등지에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망라하여 각계 각 분야에 유학을 보낸 영재들이 최고 권위를 지닌 박사가 되어 조만간 중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들의 평생을 충분히 돌보면서 세계적 도약을 위한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선진 외국에서 공부한 우수 인재가 한국에 왔다가도 일자리가 없어 다시 나가는 우리의 실정이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공룡같은 잠재력을 지닌 무서운 나라다. 지금은 우리가 좀 앞선 경제 후발국이라 하여 내려다 볼 시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중국의 추월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말은 틀림이 없지만 세상 일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 우리의 반도체산업이 아직은 석권하고 있지만 일본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 중국은 또 중국대로 반도체산업 독립의 열기가 왕성하다. 일본이나 중국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데도 우리 정부는 경기도에 반도체산업 공장 증축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
이도 국민성의 차이라 할 수 있을는지, 중국인들은 화를 자제할 줄 알고 우리는 화를 자제할 줄을 모른다. 중국의 추월 위협이 이런 차이에도 있다고 생각해보는 게 무리가 아닌듯 싶다. 화를 내는 것은 경망스런 짓이나 중국 사람들이라고 화를 아주 안 내진 않을 것이다. 다만 화를 내야할 때만 낸다면, 우리는 화를 내야할 땐 안 내고 필요없는 화만 내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이지현.(사)한길봉사회경기도회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