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즐겨보거나 심각하게 보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에 보게된 이 영화는 마음에 여운을 남겨 가끔씩 생각하게 한다.
Passion의 뜻이, 열정이 아니라 그것이 수난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제목을 들을 때마다 그 의미가 깊어진다. 예수의 인류를 향한 구원의 열정이, 결국엔 그 수난을 당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말인가? 수난의 장면마다에서 그분이 한없이 흘리는 피가, 마치 불타오르는 열정처럼 느껴진다. 향기짙은 붉디 붉은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그와 더불어 인상적인 것은, 그 열정과 수난을 함께 감당하는 사람, 그의 어머니 마리아…. 33년간 어머니와 아들로서 함께 살아온 삶의 끝에서 그들은 또 함께 수난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을 튀기며 장난을 치는 모자의 모습이 더 가슴에 아리다.
어머니와 아들, 부모와 자식은 그런 것 같다. 평생 서로 들인 시간 안에서 쌓아온 만큼, 각자 인생의 힘이 되어 주기도 하고 그늘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 아들의 수난을 그렇게 똑바로 바라보며 견딜 수 있는 어미가 과연 있을까?
하얀 얼굴에 조각같이 고요하게 서 있는 아주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로만 보아왔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데 오히려 수난당하는 아들을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그 어머니가, 더 친근하게 내 마음 안에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건다.
또 한가지, 멜깁슨이라는 배우가 10년여에 걸쳐 애쓴 끝에 만든 영화라는 것이 신선하다.
유명한 포도주는 오래 묵을수록 그 맛과 향기가 다르고 또 그 가치가 높아진다 하는데, 어떤 사람이 10년 동안 숙성시킨 신앙고백의 결정체를 자기이름을 걸고 만인 앞에 공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 들리는 말에, 만드는 과정 중에 반대도, 역경도 많았다는데 그것마저도 이겨냈다 한다. 그저 잘 나가는 배우로만 알았던 사람이 자신의 신앙고백을 향기나는 영상으로 뽑아낸 것이다. 또 그 사람의 신앙고백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종을 치듯 내 가슴을 울리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삶 안에서 10년 동안 무엇을 숙성시켰는가 돌아보게 한다.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그 어떤 고백이 있을까?
/임용걸.가톨릭대학 성빈센트병원 의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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